보통날의 시선 26
바늘 끝 하나 꽂을 데 없던 여름의 틈이 보인다.
새벽공기가 느슨하다.
훅, 끼쳐오는 한 줄기 바람에 들떴던 얼굴의 근육이 풀린다.
팔월을 감당하지 못했던 습도가 비로소 가벼워진다.
살만하다.
저절로 오는 일 없듯이
텃밭의 청양고추가 붉게 익는다.
키를 늘리던 가지가 서둘러 길이를 낮추고
해바라기 긴 줄기 안에서 공명하던 여름이 노랗게 씨를 태우며
시원하게 잘려 나갔던 머리카락이 주춤, 미용실의 계단을 늦춘다.
분명하게 알겠다.
이제, 누군가는 타는 여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
방치해 놓았던 여름풀이 장대같이 자랐으나 더는 초록을 늘리지 않으리라는 것
엎치락뒤치락 불면의 밤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는 것
목을 축이듯 마디를 굳힌 베란다의 녹보수가 지난여름의 흔적을 너울거리는 옆에서
찢어지게 우는 매미 소리에 더는 여름이 실리지 않았음을
즐겁게 실감하는 것
하여,
촘촘한 여름이 녹고 스민 구름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여름은
사느라 애쓴 누구나의 한바탕 축제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