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43
결혼 이후 고향을 떠나 살았을 때,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를 읊조리며 칠월을 보내곤 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시를 몇 번이고 소리 내 말하고 나면 피붙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시골집 나무로 된 대문에 청포도 한 그루가 있었다. 여름이면 대문 가득 넝쿨이 늘어나 그늘이 생기고 너울거리는 이파리 안에서 싱그러운 포도가 알알이 영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 포기 심었는데도 온 가족이 오가며 따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 바빠 집에 들르지 못하면 아빠는 잘 익은 청포도를 꼭꼭 싸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자식들이 오면 꺼내 왔다.
약간의 신맛에 씨가 있는 포도였는데 과수원에서 파는 포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작고 볼품이 없었으나 달고 맛있었다. 간혹 이르게 딴 포도가 섞여 있어 온 얼굴을 기분 좋게 찡그리며 저마다 고함을 지르곤 했다.
“아우 셔! 이건 더 신맛이네.”
“그래? 이것 먹어 봐. 먹을 만해. 달기만 한 걸 뭐.”
그렇게 청포도를 따 먹으며 옥신각신 아빠 앞에서 정겨운 투정을 하는 동안 도대체 누가 다 먹었나 싶게 포도는 쉽게 동이 났다. 이러다 보면 어느덧 이 고장의 유명한 ‘백구 포도’가 온 시내의 상가나 대형마트에 출하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보라색 영근 포도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계절이 온 것이다.
포도를 먹는 동안 여름이 깊어지고 대문의 포도나무 또한 시들부들 해졌다. 즐거움도 한 때라는 것을 눈으로 실감하는데, 생기를 잃고 바스락거리는 청포도 나무 이파리 소리를 들으면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척에 두고 보고 듣는 일만 같다.
아버지는 왜 대문 앞에 그것도 달랑 한 그루의 청포도 나무를 심으셨을까? 묻지 않았으나, 당신 드시고 싶은 간식거리를 염두에 둔 이유도 있으나, 대문을 들어서며 큰소리로 “아빠! 저희 왔어요.”라고 말하는 자식들의 입에 곧바로 들어가는 간식거리가 포도만 한 것이 없고, 또 그만한 얘깃거리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늘 대문을 감싸고 있는 청포도 얘기로 며칠 보지 못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포도는 같은 송이라도 맛이 제각각이다. 어느 부분은 달큼하고, 신맛이 나고, 또 어느 부분의 맛은 맹탕일 때가 있다. 사실 많은 과일이 그렇기도 하다. 포도 한 송이도 저마다 보낸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람과 햇볕, 새벽과 밤이슬, 비와 바람의 농도에 따라 맛을 다르게 익힌다. 어쩌면 자식이 커가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빠는 실감하며 사셨을 것이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우리 또한 실감하며 포도를 먹으며 여름날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청포도는 대문에서 사라졌다. 아빠, 엄마가 없는 집에서 청포도는 더 이상 싱그럽지도 달큼하지도 않았다. 저절로 크는 줄 알았는데, 아빠와 엄마의 시선은 늘 청포도에 있었음을 알았다. 대문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청포도 같은 자식들을 내내 기다렸다. 무람없이 드나드는 자식들을 보기만 해도 즐거우셨을까? 포도 철이 되니 청포도 나무를 손질하고 누런 잎 가지 쳐 내며 동그랗게 앉아 초록색 기다림을 공글리고 계셨던 부모 생각이 난다.
과일을 좋아하셨던 아빠, 특히나 여름 포도를 즐겨 드셨다. 여름이 오면 아니, 대문 앞 청포도가 더는 열리지 않으면 근처 농원에 포도를 사러 가자고 딸들을 앞세웠던 것은, 당신 돈으로 자식들에게 포도 한 상자씩 사주는 재미를 느끼고 싶으셨던 것.
“더 많이 사드릴걸!”
포도가 나오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대체로 포도를 많이 사 먹는다. 송이송이 보고 싶은 마음이 영글어 있는 포도를 먹으며 툭, 툭, 그리움을 실컷 터트린다. 한 송이 포도에는 흩어졌던 가족이 헤쳤다가 모인 듯한 제각각의 색깔을 가진 여름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