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라이프
모두를 응원하다
2주간의 격리를 감수하고 한 달간 한국에 온 일정은 모두 잘 마무리되었다. 서울에서는 홍대에 있는 호텔에서 머물렀다. 하루에 한 번은 홍대 거리의 음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설렁탕, 화로구이, 철판 볶음밥, 우동, 족발, 보쌈, 함바그 등등. 음식점은 늘 한산했지만, 맛은 늘 감동이었다.
한번 가본 음식점은 모두 애인 같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길에 손님이 있는지 빼꼼히 쳐다보게 된다. 학창 시절 손을 잡아 본 여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듯이 말이다. 미팅에서 만난 적 있던 여성의 페이스북을 가끔 들여 다 보듯이 말이다. 인접해 있는 족발 집 두 곳은 어느 집이 맛있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두 집 모두 장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 어디 그뿐이랴? 홍대 거리에 있는 모든 음식점이 잘 되기를 응원한다.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보기를 응원한다는 대통령의 말처럼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를 응원한다는 말처럼 현재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도 없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누구를 응원하게 된다. 응원하기에 보지만, 우연히 보게 되는 경우에 특별히 응원하는 선수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특정 선수가 못하기를 바라게 된다. 하여간에 스포츠를 관람하면서 모두를 응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제는 여자 US 오픈 대회가 있었다.
박인비를 응원했다. 몇 년 전에 골프 장에서 만났던 어느 아주머니는 ‘여자들이 보기에는 박인비가 예쁜 얼굴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냐고 답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제 보니 참 예뻤다. 간결한 스윙에서 오는 임팩트는 언제 봐도 좋다. 운동선수로 장수하기 위해서는 회복력(resilience)이 중요한데, 박인비는 그걸로 정말 최고다. 코로나 시대 가장 모범이 되는 선수다.
고진영을 응원했다. 지난해 브리티시 오픈에서 나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던 선수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 거의 모든 대회를 건너뛰었는데, 다시 나타나서 유감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세계 1위의 위엄은 변하지 않았다. 스포츠가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세계랭킹 1위가 잘해야 한다. 1위가 부실한 스포츠는 답이 없다. 고진영은 여자 골프의 인기를 견고하게 이끌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리야 주타누간을 응원했다. 대회 직전에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당당한 풍채마저 여리게 느껴졌다. 모리야 주타누간을 응원했다. 항상 동생에 가려 있었는데, 몸집을 제법 불렸고, 실력도 한껏 향상되었다. 보기에 좋았다.
히나코 시부노를 응원했다. 작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직접 보았던 이 선수는 너무나 특별했다. 한국 선수와 모든 면에서 대조를 이뤘다. 한국 선수들은 하나같이 자신만의 루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팬 관리마저 루틴을 따랐다. 경기 중에 자신의 루틴에 방해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부노는 달랐다. 항상 웃었고, 갤러리와 잡담을 했고, 경기중에 사진을 찍었고, 수시로 갤러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런던에는 전인지 팬클럽이 있어서 전인지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다니는 영국 아저씨들이 제법 있다. 나중에 보니 전인지 팬클럽 아저씨들이 모두 시부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골프의 여신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세계랭킹 1위인 고진영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는데, 그녀는 그걸 추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그녀가 1년 만에 US 오픈에 나타났다. 살이 조금 붙었고, 웃는 모습이 덜했다. 코로나로 갤러리가 없는 것이 그녀에게는 손해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브리티시 오픈 때의 매력을 US OPEN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실력은 그대로였다. 특히 그녀가 입은 옷이 이뻤다. 한국 선수들은 다양한 골프복을 입지만, 각각의 골프웨어가 너무 골프웨어 같은 것이 흠이다. 때론 그게 보기 싫을 때도 있다. 시부노가 입은 BeamsGolf는 그런 면에서 세련되었다. 빔스골프 대유행 예감이다.
에이미 올슨 선수를 응원했다. 우월한 신체조건과 선한 인상이 좋았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너무 진지하게 골프를 쳤는데 이틀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우승했으면 하고 바랬다.
모두를 응원하는 이 분위기 속에서 응원이 가지 않는 선수가 김아림 선수였다. 유일하게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플레이를 했다. 선수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으니 응원하기가 힘들었다. 그럴 바에야 대회에 나오지 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플레이를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 스윙이 가장 좋다고 느껴졌고, 그 스윙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다른 선수는 모두 추운 날 빙판길에서 스윙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만 따뜻한 봄날 꽃 밭에서 스윙하는 것 같았다. 이게 다 마스크 덕인지 알 수 없으나 US OPEN에서 가장 빛나는 플레이를 했다. 마스크는 방역뿐 아니라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가?
대회는 김아림 선수의 우승으로 끝났다. 모든 선수를 응원한 것이 참 신기했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모든 친구를 응원한다. 원래는 조금 그런 편이었는데, 코로나로 더욱 그렇게 되었다.
런던의 우리 교회에는 최근에 갈등이 있다. 거기서도 나는 모두를 응원한다. 그리 되니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난 모두를 응원한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대학시절 자기가 만인의 연인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누구의 연인도 아니었고 어느 여학생의 대쉬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만인의 연인인 행복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모두를 응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인기가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모두를 응원한다. 나에게 늘 비판적인 사람도, 나에게 가끔 비판적인 사람도 응원한다. 싸우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도 충분하기 때문에, 가상 세계에서까지 싸울 필요가 없다. 미워하는 것은 오프라인 세계에서 충분하기 때문에, 온라인 세계에서까지 미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홍대 거리의 모든 상가를 응원한다. 그리고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모두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