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과 대천사 미카엘

격리의 일기

by 유우리

코로나 백신과 대천사 미카엘


영국에서 많은 지인들이 코로나로 아팠다. 증상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들 잘 이겨냈다.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비행기에서 뒷좌석 승객은 간간히 마른기침을 했고, 런던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에서 앞 좌석 승객은 마르지 않는 기침을 했다. 올 한 해 코로나 검사를 다섯 번 받았다. 코로나 종료까지 몇 번을 더 검사받게 될지 모른다. 세종시에서 코로나 검사를 할 때 내 앞 줄에서 기다린 사람은 39.5도의 고열 환자였다.

영국 학교는 가을 학기가 9월 초에 시작하여 지금쯤 끝난다. 가을 학기라고도 표현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미컬마스 학기(Michaelmas Term)라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 미카엘을 기리는 축일이 9월 29일에 있기 때문이다. 미컬마스 학기가 끝나면 크리스마스가 있다. 일월 초에 봄학기인 렌트(Lent, 사순절) 학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대천사 미카엘을 그림을 통해 자주 만난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 손에 칼이나 창을 들고, 발로 사탄을 찍어 누르고 있다면, 어김없이 대천사 미카엘이다.



사탄을 찍어 누르는 미카엘의 기세 덕분인지 미컬마스 학기는 순조롭게 끝났다. 코로나 2차 피크 와중에도 학사 일정은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 16세 12세 6세 아이가 모두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를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 위협이 안된다고 하지만, 건강보다는 어릴수록 덜 위험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지난 4월에 다섯 살짜리 막내가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막내는 힘없는 소리로 불평하듯 내게 말했다. ‘아빠! 코로나는 아이들은 안 걸린다면서?’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 ‘맞아! 그러니까 너는 코로나가 아닌 거 같아!’ 고열이 발생한 하루 만에 열은 씻은 듯이 나았다. 코로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막내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이틀 앞두고 같은 학년에 확진자가 발생하여, 학교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확진된 아이는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음성 검사서(fit to fly certificate)가 필요했고, 750파운드를 주고 온 가족이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단다. 가족 중에 가장 어린 아이가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확진 사실을 학교에 통보했고, 같은 버블(bubble) 그룹에 있는 학생과 선생님이 테스트를 받았다. 우리 막내는 테스트를 받지 않았지만, 테스트를 받은 학생 중에 추가로 세명이 확진되었고, 선생님도 확진되었다. 네 명의 확진 학생 가족 중에 확진된 사례는 없었다.

부모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초등학교 1학년의 동선상 감염 경로는 학교와 집뿐이다. 어린 학생 4명은 모두 학교에서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집에는 아무도 확진자가 없기 때문이다. 경로는 선생님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영국은 감염 경로를 추적하지 않기에 더 이상의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고, 누구도 더 이상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확진된 아이들은 모두 무증상이었고, 현재도 무증상으로 집에서 잘 놀고 있단다. 감염 아이들 덕분에(?) 우리 집 막내를 포함한 같은 학년 친구들은 이틀 먼저 방학에 들어갔다. 온라인 수업 전환이지만 방학 이틀 전이라 특별한 수업은 없고 온라인에서 웃고 떠드는 것이다.



만 5세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 거리두기를 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형들과 항상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거나 품에 안겨 있거나 침대에서 뒹군다. 아이들은 증상도 없었지만, 전파도 하지 않았다. 미컬마스 텀이 시작되었을 당시의 걱정은 기우였다. 학교가 문을 열면 아이들이 감염되어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바이러스를 전달할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모두 증상이 없다거나 전파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전파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백신의 접종이 시작되었고, 백신은 70-95% 확률로 노인들을 보호한다. 넘어야 할 능선 중에 대부분의 능선을 넘은 것은 분명하다.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8부 또는 9부 능선을 넘고 있는 것이기를 기대해 본다.

해가 뜨기 오기 전이 제일 어두울 수도 있으므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른 봄에 폭설이 온다고 다시 겨울이 오는 것은 아니다. 확진자가 천명을 넘은 것은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이나 겁 먹을 일은 아니다. 일억 명 이상을 감염시키고 160만 명을 사망하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조만간 물러날 것이다. 대천사 미카엘의 발 밑에 눌려 오만상을 찌푸린 사탄처럼 말이다.



생각하면 기쁘다. 우리가 미컬마스를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듯이 크리스마스를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런던에 있든지 서울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거리에 있든지, 혼자 있든지 가족과 함께 있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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