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의 여인이라는 것은 잊어요. 구단주라고 생각해요

격리 라이프

by 유우리

구단주의 여인이라는 것은 잊어요. 그냥 구단주라고 생각하세요.


격리 기간에 크라운 시즌 4를 재미있게 보았다. 잘 만든 드라마다. 다이애나가 예쁘게 캐스팅되어 있고, 마가렛 대처는 마녀처럼 묘사된 면이 있다. 그래도 나는 다이애나의 고뇌보다는 대처의 고뇌에 감정이 이입된다. 보수의 피가 내게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마가렛 대체를 철의 여인이라고 하는데, 왜 철의 여인이라고 부르는지 알겠고, 그 이외의 다른 표현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손흥민이 런던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토튼햄은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이는 모두 손흥민의 활약 덕분이다. 최근에는 맨시티, 첼시, 아스날 등의 강팀과 대결했는데도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첼시와의 경기를 관람한 축구팬이라면 첼시의 전력이 탄탄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젊은 선수들로 팀이 개편되었지만, 빠르게 안정되었다. 첼시, 리버풀, 맨시티 중의 한 팀이 우승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그중에 첼시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 물론 손흥민이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토튼햄도 우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첼시의 구단주는 러시아의 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그는 고아로 성장했다. 러시아 재벌이 잘난 맛에 까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브라모비치는 정치권력과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99년도에 그가 재산을 불린 과정은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보다 더 극적이다. 러시아 재무부 장관이 골드만 삭스의 러시아 대표와 술 한잔 하면서 은근히 러시아 국고채인 ***이 디폴트가 날 것을 걱정한다. ‘너한테만 말하는 것이니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다.



다음날 채권 시장에서 해외 투자가의 투매가 시작된다. 1000원짜리 채권이 갑자기 200원에 거래된다. 그러면 아브라모비치가 러시아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폭락한 채권을 시장에서 긁어모은다. 한 달 후에 러시아 정부는 ***채권의 조기 상환을 결정한다. 이런 기법은 천재적이지만, 러시아 재벌이 재산을 축적하는 기법으로는 족보에도 없는 잔 기술에 불과하다. 재무부장관은 골드만삭스를 속였지만, 다른데 말하지 말라는 약속을 골드만삭스도 지키지 않았으니 셈은 same same이 된다.

아브라모비치의 천재성은 런던 축구클럽 첼시를 인수하면서도 드러났다. 2003년에 첼시를 인수하는데 든 비용은 1억 4천만 파운드였다. 인수 후에 첼시는 17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세계적인 축구 클럽으로 성장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첼시의 기업 가치는 20배 이상 증가했다.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투자가 성공한 것을 본 전 세계 부호들은 앞 다투어 영국 축구클럽을 인수하려 뛰어들었다.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발전했지만, EPL이 다른 축구 리그와 비교하여 현재와 같은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였다.



그러나 영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영국은 2018년부터 첼시 구단주인 아브라모비치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영국 정부는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투명한 자료제공을 요청했고, 아브라모비치는 납득할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단주가 영국에 오지 못하면서 구단주가 계획했던 축구장 신축 계획도 보류되었다. 아브라모비치는 열성적인 첼시 팬을 통해 비자발급을 압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 재벌에 대한 영국의 비자 정책을 변경시키지는 못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재무부 장관과 짜고 어리숙한 골드만삭스를 속여 국고채 투매를 일으켰다’고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첼시 구단주는 영국에 전혀 들어올 수 없는가? 아브라모비치는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해 놓은 상태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이스라엘 국적 취득을 희망하기만 하면 지체하지 않고 국적을 부여한다. 유대인인 아브라모비치는 현재 러시아와 이스라엘 이중 국적이며, 이스라엘 여권을 가지고 영국에 들어올 수 있다. 이스라엘인은 한국인처럼 일년에 6개월까지 무비자로 영국 체류가 가능하다. 영국 정부는 아브라모비치가 이스라엘 여권으로 영국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렇게 입국할 경우에 일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의 축구 관람은 일에 해당할까? 그는 아직까지 이스라엘 여권을 이용하여 영국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첼시 구단주 역할을 누가 담당하고 있는가? 축구계의 마가렛 대처로 불리는 불리는 마리나 그라놉스까야다. 그녀는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후에 모스크바에서 런던으로 건너왔다. 구단주의 러시아 친구들이 런던에 놀러 오면 축구 경기 티켓을 예약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2003년까지 그녀는 축구 경기를 단 한번도 직접 관람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그녀가 현재는 첼시의 구단주 역할을 맡고 있다. ‘구단주의 여인이라는 말은 잊어요. 그냥 구단주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500개가 넘는 트레이드 계약을 직접 지휘했으며, 현재 첼시는 EPL에서 가장 젊고 핫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보통 자신들이 비즈니스를 잘하며,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없을 경우에 아내나 주변의 여인들이 어떻게 복잡하고 지저분한 문제를 해결할지 걱정하곤 한다. 우리 가족이 처음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모든 크고 작은 문제를 잘 해결했다. 문제를 잘 처리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항상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그 비법을 알게 되었다.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 말이다. 그 후로 아내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대게의 경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쓰지 않았다.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내가 지불하는 것의 1/5 수준에서 처리할 때가 많았다. 그동안 내가 지불했던 돈은 사실은 거의 헛돈이었던 셈이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직접 운영하던 초기의 스탠스가 바로 ‘How much?’였다. 그러나 마리나 그라놉스까야가 협상을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선수를 영입하거나 풀어줄 때에 돈으로 해결하는 정책이 아니라 비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수를 인간적으로 접촉하여 데려오기 시작했고,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구단에 손해가 되어도 과감하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잘 풀어주기 때문에 선수들도 오면서 부담감이 없었다. 팀에 적응하지 못해도 쉽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훌륭한 선수들이 쉽게 첼시에 왔고 쉽게 첼시를 나갔다. 첼시는 많은 선수들이 와서 뛰기 희망하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축구계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으며, 영국 스포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우먼이 되었다.


손흥민의 활약으로 토튼햄이 리그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한다면 EPL은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러시아 유대인 팀 첼시와 영국 유대인 팀 토튼햄의 대결이 될 것이며, 뒤늦게 축구를 배운 여성 리더십과 어릴적부터 축구팬이었던 남성 리더십 간의 대결이 될 것이다. 손흥민이 있어 토튼햄을 응원하지만, 철의 여인이 축구를 제패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격리 기간에도 그랬지만, 사실상의 락다운 상태라서 그런지 더욱 여인이 그립다. 철의 여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립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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