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라이프
스타벅스와 시골 다방
런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커피숍을 내 기호 순으로 나열하면 이렇다. 스타벅스(Starbucks), 코스타(Costa), 네로(Nero), 프렛 어 망가(Pret a Manger). 이것 말고도 맛 좋고 편안한 로컬 커피숍이 많다.
코스타는 무엇보다 색감이 좋다. 코스타라고 쓰인 글자체도 좋다. 커피잔을 잡았을 때 느낌이 좋다. 코스타 컵 중에 크리스마스 에디션이 특히 좋다.
네로는 올드한 분위기가 좋다. 소파와 탁자를 포함하여 모든 게 올드하다. 올드함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프렛 어 망가는 밝고 모던하다. 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프렛에는 한달 내내 커피와 차를 무한정 마실 수 있는 멤버십이 있다. 3만 원만 내면 된다. 바코드 하나를 온 가족이 같이 쓸 수도 있다. 시티(City)에서 금융회사에 다니는 아빠, 웨스트 엔드(West End)에서 큐레이터를 하는 엄마, 윔블던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같이 사용할 수 있다. 획기적이지 않은가? 30분 안에만 재사용이 안된다.
스타벅스가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다. 스타벅스는 런던 중심가 최고 위치에도 있고, 동네 외진 구석에도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늘 부족해 보인다. 스타벅스의 인테리어는 점포마다 독특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부족함이 없는 편안함’이 그것이다. 화려하거나 검소하거나, 넓거나 좁거나, 중심가나 변두리나 가리지 않고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맘이 편안하다. 눈에 거슬리는 것을 찾기가 힘들다. 편안함의 정체가 궁금하다. 스타벅스 인테리어의 비밀은 코카콜라 맛의 비밀처럼 신비하다.
홍대에도 새로 생긴 스타벅스가 있는데 대학가 아크로폴리스 분위기가 한껏 난다. 커피를 사러 갔다가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잠시만 앉아 있다 가도 되나요?’라는 불경스러운 말을 할 뻔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아버지는 면 소재지에 있는 다방에 다니셨다. 거기서 차를 마셨고, 장기를 두셨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방에 가는 게 아니라 다방에 가면 친구를 만나는 구조였다.
커피맛? 미스 김이나 미스 리가 커피를 잘 탔다. 커피 두세 스푼, 설탕 한두 스푼, 프리마 한두 스푼으로 휘휘 젓는 커피를 미스 김은 무슨 재주로 그렇게 맛있게 탔는가? 이태리 커피 머신과 콜롬비아 원두를 쓰는 바리스타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맛을 말이다.
인테리어? 되는 대로 벽지 붙이고 되는 대로 소파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청소는 잘했을 것이나 쾌적하지 않았을 것이고, 담배 냄새도 쩔었을 것이다. 그곳은 왜 좋았을까? 그렇다고 전설의 레지 누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작은 시골에서 자동차도 없는데 맘에든다고 한들 뭔 도리가 있었겠는가?
한국 방문 기간동안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된 탓에 커피숍에 앉아 있지 못했다. 커피를 사서 추운 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커피를 마시고 바쁘게 헤어져야만 했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을 곳이 있다면 어디든 좋았을 것이다. 식당은 되는데, 커피숍은 안 되는 것도 딱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식당에서 밥풀 튀었다는 이야기는 많아도, 다방에서 커피 튀었다는 이야기는 드물지 않은가?
어차피 비합리적인 거라면 3단계가 아니라면 영세한 동네 다방은 영업을 허용해 주는 것이 어떨까? 스타벅스는 버티더라도 영세 다방은 이 상황을 못 버틸 거 같다. 스타벅스가 임대료 못 낸다고 하면 건물주가 ‘뭐 도와 드릴 거 없냐?’고 묻겠지만, 동네 다방이 그렇게 말하면 허름한 소파는 거리로 내동댕이쳐질 테니 말이다. 스타벅스와 홀리스 커피 문 닫은 상태에서 동네 다방 돈 좀 벌게 말이다.
브랜드 커피숍이 로컬 다방이라고 우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원산지가 표시된 원두를 쓰면 반칙이고, 플랫 화이트나 프라푸치노 나오면 반칙이고, 이태리 커피 머쉰에서 치익 소리와 함께 수증기 나오면 반칙인 것으로 하고 말이다.
아쉬운 것은 커피가 아니라 자리였다. 시골다방과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도 자리였다. 한국 방문을 마무리하면서 시골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지 않은 것이 가장 후회된다. 시골 다방도 테이크 아웃은 되었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