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모르는 잘못된 끈기의 경제학
1) 전초기지가 주는 전략적 교훈
교두보 효과(Beachhead effect)는 경제학에서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미 투입된 자원과 노력에 집착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지속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원래 군사 전략에서의 교두보는 적군 지역 해안에 먼저 상륙한 부대가 본격적인 내륙 진격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초기지를 뜻한다. 이는 단순한 거점이 아니라, 해상에서 육상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후속 부대의 안전한 상륙과 병참 지원을 보장하는 핵심 지점이다. 말하자면, 상륙작전에서 확보된 교두보는 포병 배치, 방어 진지 구축, 보급품 하역 등 다양한 군사 활동의 발판이 되며, 이를 잃으면 전체 작전의 성패가 위태로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 실패가 예견되더라도 선발대나 후발대 모두 쉽게 철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전개한 병력과 장비를 회수하는 데 따른 위험과 추가 손실 가능성, 철수가 사기와 정치적 신뢰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그리고 기존 계획 변경 시 발생하는 복잡한 지휘·통신 체계의 혼란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되어, 합리적으로는 중단이 맞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작전을 지속하는 결정을 유도하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해야 한다’는 심리로 인해 더 큰 손실을 감수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매몰 비용(sunk cost)은 이미 지출되어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의미하며, 이는 현금 지출뿐만 아니라 인력, 시간, 기회비용 등 모든 형태의 비가역적 투자를 포함한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이러한 매몰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앞으로 발생할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의 비교에 기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미래의 순편익(net benefit)을 극대화하는 선택이 유일한 합리적 판단이며, 과거의 지출은 경제적 가치 판단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손실 회피 성향(loss aversion)과 ‘자원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사회·문화적 규범에 영향을 받아, 이미 발생한 비용을 회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심리가 작동하면 합리적 판단 대신 비효율적인 선택이 이어지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된다.
2) 전장의 심리, 시장의 심리
현실에서 교두보 효과는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 기업이 신제품 개발에 이미 수십억 원의 자금과 수년간의 연구 인력을 투입했는데, 최종 시장 조사 결과 해당 제품의 수익성이 낮게 나왔다고 하자.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즉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경영진은 “여기까지 투자했으니 끝을 보자”는 심리와 내부 정치적 부담, 투자자 설득 문제로 인해 사업을 강행하게 된다. 이는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 생산 설비 투자, 재고 관리 부담 등 연쇄적인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돈을 지불한 공연 티켓이 있지만 공연 당일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나 악천후가 발생했을 때, ‘아까우니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이동 시간과 체력 소모, 건강 악화라는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티겟 비용의 손실을 보더라도, 공연 관람을 포기하고 다른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생산적인 활동으로 대체하는 것을 권한다. 다른 예로, 건설 프로젝트에서 예상치 못한 지질 문제나 인허가 지연으로 비용이 폭증했음에도, 이미 기반 공사를 마친 상태라 공사를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선택들은 모두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
웹툰 산업에서도 이 효과는 빈번히 관찰된다. 플랫폼이 이미 계약금과 제작비, 마케팅 예산, 사전 홍보 캠페인 비용 등을 상당 부분 집행한 작품의 경우, 초반 회차에서 구독 수, 유료 결제 전환율, 댓글 반응 등 주요 KPI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미 투자했으니 끝까지 가자’는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선택은 편집 리소스, 홍보 채널, 추천 알고리즘 내 노출 슬롯, 해외 번역·현지화 예산 등 유한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소모하게 되어, 장기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작이나 인기작에 배정될 기회를 잠식한다.
1) 시기를 놓친 결단, 잃어버린 기회
특히 일정이 고정된 시즌제 연재 구조나 특정 이벤트·캠페인과 연계된 작품은 부진한 작품을 억지로 유지하는 동안 홈 화면, 추천 영역, 배너, 푸시 발송 등 주요 노출 자원이 계속 묶인다. 그 결과 예정돼 있던 다른 프로젝트의 파일럿 공개, 프리런칭, 정식 론칭이 순차적으로 지연되고, 번역·편집·심의 등 내부 제작 파이프라인에 병목 현상이 발생해 전체 출시 일정이 늘어진다. 이는 신작의 초기 노출량과 실험 기회를 줄여 잠재적인 히트작 발굴 가능성을 낮추고, 플랫폼의 포트폴리오 수익성과 시장 대응 속도를 떨어뜨린다.
마케팅과 운영 부서가 부진한 작품의 생명연장과 회생 가능성을 위해 추가 프로모션, 유료 쿠폰·보상 지급, 크로스 프로모션 등을 반복하면, 단기적으로는 노출과 유입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할인·쿠폰으로 유입된 이용자는 잔존율과 결제 전환율이 낮아지고, 가격 기준점이 낮아져 정상가 결제에 대한 저항이 커진다. 상위작과의 크로스 프로모션은 트래픽을 잠식해 전체 포트폴리오의 수익성과 이용자 경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동시에, 같은 예산으로 신작 테스트나 타깃 세그먼트 실험을 할 기회를 잃게 되며, 추천 알고리즘이 품질이 낮은 작품에 과도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왜곡도 발생한다.
그렇다고 부진한 작품은 무조건 하차시키거나 배제하라는 단순한 판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만 판단의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개선을 위한 전략적 시도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결단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한계 투자 수익률을 떨어뜨리고, 플랫폼의 브랜드 신뢰와 독자 경험을 해치며, 성장 기회를 놓치는 패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두보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중간 평가와 자원 재배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중도 종료를 실패가 아닌 전략적 선택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작가 측면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나타난다.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쳐 집필한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이 독자 반응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더라도, ‘여기까지 왔으니 완결을 봐야 한다’는 심리와 이미 소진된 체력·시간·정서적 투자에 대한 집착이 결합되어, 대규모 서사 수정이나 결말 구조 변경, 장르 전환, 심지어 휴재 후 재정비와 같은 과감한 조치를 주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단순히 집필 부담을 넘어, 원고 마감 압박과 독자 기대치, 플랫폼과의 계약 조건 등 여러 제약 요인 속에서 방향 전환을 더욱 어렵게 느낀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창작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뿐 아니라, 작품 후반부의 완성도 저하, 독자 이탈 가속화, 리뷰·평점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작가 브랜드 가치 하락, 플랫폼과의 재계약 가능성 감소, 차기작 투자 유치 실패로 직결될 위험이 크다. 또한 부진한 작품을 완결하기 위해 시간을 계속 투입하는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나 협업 제안 등 잠재적인 창작 기회를 놓치게 되고, 시장 트렌드 변화에 맞춘 신작 출시 시점도 뒤로 밀리면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 후퇴를 통한 성장 전략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다층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정량적·정성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KPI, ROI, 독자 피드백 등을 종합 분석하는 중간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매몰 비용 여부와 관계없이, 향후 한계편익이 한계비용을 초과하는지에 따라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중도 종료=실패’라는 인식을 탈피하고, 이를 시장 대응과 자원 최적화를 위한 ‘전략적 재배치’로 재정의하는 조직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보고서와 시나리오 분석을 활용해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전 기획 단계에서 최소한의 비용과 기간으로 시장 반응을 검증할 수 있는 MVP(Minimum Viable Product) 방식의 테스트 연재를 적극 도입해, 초기 성과를 기반으로 투자 규모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단계적 자원 투입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넷째, 작가와 플랫폼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정기적으로 재검토하고, 부진작 철수와 신작 론칭 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계약 구조, 편집·마케팅 리소스 배분, 추천 알고리즘 조정 등 전반적 운영 시스템의 재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교두보 효과는 단순한 심리적 오류를 넘어, 개인과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와 자원 배분 방식 전반에 깊이 관여하는 구조적 문제다. 따라서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매몰 비용의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웹툰 산업에서는 이러한 체계가 장기적인 사업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유망한 프로젝트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전략적 조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