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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Feb 02. 2023

풀만 뜯은 지 10개월. 내 몸에 생긴 소소한 변화들

하찮은 불편함이 사라지고 있는 채식주의자의 몸

 어느덧 채식을 한지도 4년이 되었다. 완전 채식을 시작하고 비건이 된 지 10개월이 된 시점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채식여정을 돌아본다.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와 한 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지박약에 유혹에도 몹시 약한 귀 얇은 잡식성 곰이었던 내가 고기를 끊기로 다짐한 후 실천하기까지는 무려 9년이 걸렸다. 건강과 동물을 생각해 처음 육식을 끊고 나서 한 달 만에 다시 치킨을 먹고, 또 몇 년 만에 고기를 끊었다가 다시 한 달 만에 게눈 감추듯 돼지 뱃살을 탐하고 난 뒤 채식을 짝사랑하며 회피하던 중 어쩌다 명상을 시작하며 영적 성숙에 호기심이 생기게 된 계기로 3년을 페스코테리안(유제품, 생선, 달걀까지 허용하는 채식)으로 살다 여러 채식 서적을 참고하며 채식에 관한 지식을 쌓은 뒤 비건으로서의 삶을 도전해 보았고, 현재 순수자연식물식으로 소박하고 생기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존 맥두갈 박사의 프로그램(현미밥과 채소, 과일, 해조류를 기본으로 고구마, 감자등의 구황작물을 양껏 섭취하는 자연 식물식 식단. 우리나라의 전통 밥상과 흡사하다)과 이의철 박사의 자연식물식을 참고하면서 동물성 식품은 물론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 해로운 가공식품도 절제하고(라면, 과자,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던 인간이 그걸 독하게 끊었다!), 다양한 채소와 과일, 곡물, 씨앗, 해조류를 섭취하기 시작하니 드라마틱하게도 관절염이 싹 나아버렸다.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던 나는 20대 초반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 다친 무릎이 욱신거려 비만 오면 골골대기 일쑤였고, 자원봉사하며 머물던 스위스에서 계단이 있는지 모르고 내려오다 접질린 오른쪽 발목은 몇 년이 지나도 시큰거렸다. 툭하면 재발해 며칠을 걷지도 못했던 허리병이 병원 한번 가지 않고 백팔배와 채식으로 3년이 넘는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있다.


 내게 할머니 체험을 젊어서 하게 한 관절염이 다 나은 것도 신기한데 평생 곁에서 지긋지긋하게 들러붙어 떠나지 않던 변비도 사라져 그야말로 천국이다. 부드럽고 수분이 풍부해 보이는 대변과 매일 만나고, 힘들이지 않으면서 시원하게 배변해 아랫배가 홀쭉해짐과 동시에 배변 시 악취가 나지 않아 탈취제도 필요 없다. 반면 고기를 먹은 후의 대변은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고기를 소화시킬 때 발암물질이 장내에 발생하고 대장암 발병확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많듯이 육식은 대장에서 독소를 배출한다. 이에 반해 섬유소는 대장 내 독소를 흡수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생리 전 증후군과 생리통도 사라졌다. 생리하기 며칠 전 발열과 오한으로 항상 감기로 착각하던 생리 전 증상이 사라져 일상이 한결 편해졌고, 아랫배에 묵직하고 싸한 통증을 30년 동안 내게 선사한 생리통이 사라지니 세상 행복하다. 환경과 생리통 개선을 위해 면생리대를 20대부터 사용하고 있지만 채식하고 부터 생리시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십여 년 전부터 발발한 알레르기 증세로 밤마다 긁던 피부가 가라앉았고, 워낙 예민해 숙면을 취하지 못하던 내가 밤잠을 설치지도 않는다. 작은 소리에도 초 민감해 한번 깨면 다시 잠이 들기까지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걸릴 정도였는데 깊은 단잠을 이루고 이젠 어쩌다 한번 깨어나도 금방 다시 꿈나라로 간다.


 식품첨가물이 가득한 조미료 범벅의 배달음식, 가공음식 등으로 식사를 하고 난 후 틈만 나면 살살 아프던 왼쪽 아랫배가, 독하게 끊고 나니 이젠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는다. 게다가 밥맛이 너무 좋아져 내가 만든 밥과 반찬에 이리도 황홀해하던 사람이었나 놀라곤 한다. 껍질을 벗겨 길게 자른 날당근 한쪽을 씹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오고, 막 씻은 날깻잎 한 장 입에 물고서 그 특유의 상큼한 맛에 반해 할렐루야를 외친다. 순수 식물식을 하며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오고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의 선조들이 먹던 그대로 먹고 싸며 건강을 되찾고 있어 감사할 뿐이다. 완전 채식으로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고 동물해방과 환경보호에 미약하게나마 동참하고 있어 위기의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는 결심도 굳어졌다. 입에 넣는 것들을 바꾸니 저절로 탐욕과 소비욕구도 줄어 미니멀하고 단순하게 사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비건 동물 토끼. 종이 위에 혼합재료 노니 그림. 아직 미완성이다..2018년에 밑그림 그리기 시작한 게으른 화가의 그림


 의지박약에 독기도 없고 우유부단하며 게으른 내가 비건이 되었다는 건 나를 잘 아는 이의 말에 의하면 쇼킹 그 자체이다. 위에 언급했듯 나는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던 잡식성 대식가였다. 채식하기 전 내가 사랑하던 음식들은 순대, 선짓국, 보쌈, 족발, 돼지고기 김치찌개, 삼겹살, 소시지, 소갈비, 갈비찜, 장조림, 소고기 미역국, 생선초밥, 양념치킨, 오징어, 새우튀김 등등이다. 순대는 나의 인생을 외치던 돼지고기 애호가가 지금은 순대 파는 곳에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거북할 정도다. 고기를 끊고 4년을 살다 보니 이젠 종종 고기냄새가 역하게 느껴지고 예전엔 어떻게 동물성 식품을 먹으며 살았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후각이 놀랄만큼 예민해졌다.  


 여드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삶을 살던 오이껍데기 피부가 현미를 먹기 시작하며 오톨도톨하던 여드름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비건이 되고나서 피부 좋다는 얘기도 자주 듣게 됐다.


https://brunch.co.kr/@shinyartist/105


 살도 완전히 빠져 두 턱이 사라졌고, 뼈가 깊숙이 숨어있던 팔뚝 살도 골룸처럼 앙상해졌으며, 입던 청바지가 줄줄 내려와 더이상 못입게 돼 의류함에 넣어버렸다. 피부가 좋아지고 살이 빠지니 예쁘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지금의 모습은 내가 봐도 마음에 들 정도로 늘씬하고 빛이 난다. 늘 과하게 먹어 그 과보로 텔레토비 몸매를 갖고 임신 5개월이란 소릴 듣던 20대에 쓸데없이 축적해 두었던 지방이 대부분 사라져 몸이 더 가볍고 마음마저 상쾌한 느낌마저 든다. 예전 사진을 보면 너무 잘 먹어 탱탱하다 못해 살이 터질 것 같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과거 속의 난 닥치는 대로 먹는 게 삶의 사명이었고 스트레스는 무조건 먹는 걸로 풀었다. 그렇게 식탐 절고 뭐든 잘 먹던 내게 가족들이 붙여준 별명은 ”곰녀 “ 였다.

나의 흑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는 흑곰들. 나는 곰이 귀여워서 좋다.







 식물성 식품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걸 채식 공부하기 전까지는 몰랐기에, 영양 결핍증에 걸릴까 두려워 비건이 되기를 망설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어나서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바로 비건이 된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과자가 좋아 국내유명제과회사에서 1년 동안 알바를 하고, 과자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공식품 마니아였던 내가 과자, 아이스크림, 라면을 포기한 것은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화학물질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혀를 현혹시키지만 자연스러운 맛이 결코 아니며 건강에 해로운 식품첨가물 범벅인 가공식품을 몇 권의 전문서적을 읽고 멀리하게 되며 거의 모든 음식을 손수 장만하고 있기에 요리하며 걸리는 시간은 길고 장 보는 시간도 엄청나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 곁에서 김치 담그고 채소 다듬은 전적이 있어 버릇이 되어 그런지 어렵지 않다. 초등학생이 제사상에 올리는 동그랑땡, 생선 전, 두부부침, 만두, 송편 등등을 만들 줄 알았으니 지금 부엌일을 하는 게 습관이 된 건 누구보다 요리에 진심이셨던 어머니 덕분이다. 30년 전 우리 집에 들기름을 짜는 기계, 두부 만드는 기계, 국수 뽑는 기계까지 있었다고 말하면 다들 놀란다.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던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떡과 강정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인기 최고였고, 직접 메주를 떠 간장과 고추장을 만들던 어머니를 도와 난 이미 어릴 때부터 네모나게 메주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요리솜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유산이나 다름없다. 중학교땐 끝없는 집안일을 하느라 주부습진에 걸리고 명절스트레스를 겪을 만큼 전 부치며 괴로웠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거의 모든 음식을 만들어 먹는 비건으로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엌에서 요리하는 버릇을 들여주신, 돌아가신 어머니께 무한 감사드린다.




비건 식단은 아마 지구에 대한 당신의 영향을 가장 크게 줄이는 단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조지프 푸어(옥스포드대학 교수)




풀만 뜯는 코끼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다. 코끼리같은 우리 엄마를 그렸다. 종이 위에 수채, 잉크. 노니 그림 2019


더 많은 그림 보러 놀러 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꽃그림 전문입니다.

수채화로 그린 꽃그림들입니다.

밤하늘도 종종 그립니다. 수채, 아크릴, 유화로 그린 밤하늘 그림들.

유화로 그린 돌고래와 뉴질랜드 그림 부분.


“Nirvana” Mixed media on paper by Noni Choi종이 위에 수채, 잉크. 노니 그림. 2019-2021년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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