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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Jan 19. 2023

나의 프랑스 채식인 친구

한국인은 개를 먹는다며 몰아붙인 독일인들을 응징해 준 루씨

 15년 전 뉴질랜드에서 만난 프랑스인 친구 루씨.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곱슬머리에 몽블랑 산처럼 높은 코를 가졌지만 도도하게 생긴 파리지엔느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털털하고 늘 웃음과 장난기 가득한 루씨와는 같은 집에서 하우스메이트로 만나게 되면서 친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고 노래와 춤, 음악 없이 절대 못 사는 흥부자 루씨는 밝고 자신감 넘치며 긍정적인 성격에 프랑스인답게 굉장히 솔직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하며 웃음코드가 잘 맞아 우린 곧 좋은 친구가 되었고 어느덧 친구가 된 지도 15년이 넘었다. 2015년 루씨는 지질학을 연구하던 과학자 신분에서 벗어나 프랑스 고등학교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며 영국에서 일 년간 공부하려고 내가 그림 그리며 머물던 브라이튼으로 왔다. 30대가 되어 영국에서 다시 만난 우리 둘은 서로 조금씩 변해있었다.


"나 이제 채식주의자야. 아직 유제품과 계란은 먹지만."


 루씨의 식습관 변화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국에서 채식을 한번 시도했다 치킨이 미친 듯이 먹고 싶어 사람들의 머리통이 온통 잘 구워진 통닭구이로 보일 정도로 환영에 시달려 한 달 만에 포기했던 의지박약인 내게 채식주의자는 존경의 대상이었고, 어떤 음식도 잘 먹다 채식주의자가 된 루씨는 채식의 문턱에서 기웃거리던 나를 채식의 세계로 등 떠밀어준 고마운 친구다. 내가 치킨을 그리워했듯이 루씨는 베이컨을 그리워했지만 동물의 권리와 지구의 환경 그리고 건강을 위해 단호히 육식을 멈췄다. 그녀의 변화된 식생활 습관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는 고기를 끊지 못해 입으로는 동물들의 사체를 탐하면서 가슴속으론 동물들에게 미안해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한국과는 달리 유럽에선 채식주의자를 빈번히 만날 수 있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영국의 채식주의자는 전체인구의 11%가량 되고 한국의 채식인구는 3%라니 꽤 큰 차이가 난다. 한국의 비건 인구는 0.2%이다. 천명 중 두 명꼴이다.


  2007년 12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선 우리 둘 다 아무 음식이나 골고루 다 잘 먹던 노말 한 사람들이었다. 정성스레 공들여 만든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온 세상을 다 가진듯한 느낌이 좋아 요리를 즐겨하던 나와는 다르게 루씨는 요리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프랑스인은 요리에 미쳤다는 편견을 깨게 해 준 친구) 토마토소스 통조림을 버무린 파스타를 주식으로 먹던 20대 중반의 평범한 아가씨였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루씨가 부엌에서 저녁으로 먹을 요리하기 싫다고 앙탈 부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종종 넉넉한 저녁식사를 만들어 루씨와 나누어 먹으며 친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함께 극장에 가기도 하고, 헤글리 공원에서 꽃구경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리카톤에 있던 집 정원 한 구석에 핀 아름다운 여름꽃 아가펜터스, 아프리칸 릴리
너무 맛이 없어 아무도 먹지 않던 관상용 오렌지 나무와 내가 만든 단호박 샐러드
작업실 겸 침실이었던 작은 나의 방과 같이 살던 아냐의 생일을 맞아 그려준 초상화 선물
처녀들의 크리스마스 이브. 루씨, 아냐 그리고 나. 뒷마당에서 종종 즐기던 주말 바베큐파티

언젠가 여자만 바글거리던 우리 집에 드디어 남자가 이사를 와 모두들 들떠 있던 적이 있었다. 남자 둘이 있기는 했지만 애인이 있었고, 캐나다녀 한 명, 독일녀 세명과 프랑스녀 루씨, 그리고 유일한 동양녀인 나는 모두 외로운 싱글레이디들이었다. 부엌에서 처음 본 새로운 하우스메이트는 잘생긴 얼굴에 키도 커서 처녀들은 저마다 질문을 던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남이라면 동공이 심하게 확대가 되는 꽃미남 애호가인 나 역시 그에게 최대한 예쁘게 보이려 노력하며 인사를 건네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왔니?"

"프랑스에서"

"어? 나도 프랑스 가봤는데~ 난 리옹에서 2달 있었어."

"그래? 나도 리옹 출신이야."


 OMG!!!! Destiny!!!!

처음엔 운명인 줄 알았다. 레미라는 이름의 구불거리는 밤색머리 프랑스 꽃미남이 내 운명의 그가 될 줄만 알았다. 내가 있던 리옹에서 온 백마 탄 왕자. 작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금사빠는 그렇게 프랑스남자에게 빠져들었지만 금세 사랑이 식고 만 사건이 벌어졌다.


 레미가 이사 온 며칠 후 그날따라 요리하기가 귀찮아 라면을 끓이고 있던 어느 저녁, 레미와 독일녀 아냐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나는 한국인의 라면에 빠지면 섭섭할 파(Spring onion)를 썰고 있었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으며 강력한 MSG의 향기가 퍼지는 순간 계란 하나를 깨어 퐁당 빠뜨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던 레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지금 계란 넣었니? 어떻게 계란을 끓고 있는 인스턴트 누들에 넣을 수가 있지?"


짜식. 요리의 천국 프랑스에서 왔다면서 이런 라면의 진수를 모르는 군.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너도 한번 시도해 봐."


싱긋 웃으며 송송 썬 파를 넣고 불을 끈 뒤 식탁으로 와서 라면을 먹기 시작하는데 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이사오기 전에 세명의 한국인들과 같이 살았는데 그들이 뭘 요리해 먹었는지 알아? 한번 맞춰봐. 상상도 못 할걸. 후아..."


영혼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던 레미를 보고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느끼며 되물었다.


"뭐.. 뭔데?"


"Pig's ear."


 응? 돼지귀? 가끔 순대 먹을 때 내장하고 즐겨 먹기는 했어도 한국에서 일반인이 요리하는 걸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들은 어디서 그 귀한 돼지귀를 구했지? 그 맛있고 쫄깃쫄깃한 것을!!


 그러나 레미는 돼지귀를 보고 너무나 극심한 컬처쇼크에 부딪힌 후 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혐한을 가득 안고 유러피안들과 잘 살아보고자 이사를 온 그는 그 집의 유일한 한국여자가 라면에 날계란을 퐁당 빠뜨리는 요상한 요리를 하자 신나게 돼지귀를 자르며 요리하던 한국인들의 끔찍한 모습이 오버랩되어 트라우마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저 라면을 맛있게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한국인들을 몽땅 싸잡아 이상한 걸 먹는 사람들로 인식해 버린 깨어있지 못한 그가 안타까웠다.


 그때 옆에 있던 독일녀 아냐가 던진 한마디 폭탄-


"한국인은 개도 먹는대!"


나름 이 집에서 절친이었던 아냐가 한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잘해줘 봐야 소용없구나. 그렇게 친하게 지내놓고(나 혼자만 친했나?) 이런 상황에 개고기 이야기를 꺼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냐~


 나를 야만인 취급하는 고고하신 유러피안들 앞에서 더 이상 라면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너무나 창피하고 국가적 망신이라 여겼기에 할 말이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낄끼빠빠 못하고 인종차별을 하는 아냐가 무안해질 정도로 쏘아붙였겠지만 그땐 너무 여렸고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묵묵히 라면볼을 싱크대로 갖고 와 국물을 버리는데 레미가 미안해졌는지 국물은 왜 안 먹고 다 버리냐며 이상해진 분위기를 모면하려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아무 대답 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설거지를 마친 뒤 이층 내방으로 올라와 잠들기 전까지 생각에 잠겼다.


돼지귀

개고기

돼지귀

개고기


어떤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 걸 좋아한다

흠씬 두들겨 패서 숨통을 끊고 난 뒤 먹으면

육질이 쫄깃쫄깃해서 더 맛있다나

먹고 나면 힘이 불끈 솟기도 한단다


어떤 사람들은

개고기 먹는 걸 혐오한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개를

어떻게 먹을 수가 있냐면서

그러면서 개보다 더 영리한 돼지를 잡아먹는다

돼지와 개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내가 그동안 먹어치운 돼지들에게 미안해 그려본 돼지 그림이다. 종이 위에 혼합재료 2021


 그 일이 있은 후로 아냐와 피아(역시 독일인)가 부엌에서 함께 요리 중인 나와 루씨 앞에서 대놓고 개를 먹는 한국인 이야기를 하며 끔찍하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 루씨가 발끈하며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어투와 격앙된 톤으로


"독일인들은 돼지뒷다리로 이상한 요리도 만들어 먹던데?! 돼지랑 개가 다르니? 같은 동물이야. 그리고 얘가 여기서 개를 먹었어? 왜 얘를 비난해? 너희들 그거 인종차별이야!"


 따발총처럼 쏴댄 루씨의 엄청난 말발에 깨갱하고 기가 죽은 두 명의 독일아가씨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엌을 떠났고 잠시 후 사과의 의미로 루씨와 내게 디저트로 먹으라며 치즈케이크를 주고 갔다.


 그 사건 이후로 정의의 사자가 되어 친구를 지켜주고 변호해 준 루씨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우리의 우정은 더 깊어져 갔지만 내가 원인과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으로 크라이스트 처치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사경을 헤매다 결국엔 한국에 돌아오게 되어 우린 그렇게 헤어지게 되고 그 후로 영국에서 7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루씨는 어떤 고기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개와 돼지를 평등한 존재로 여기는 박애주의자 루씨다웠다.


루씨는 위빠사나를 기본으로 명상수행하고 있다며 자신이 공부한 불교 교리와 계율을 내게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위빠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위(Vi)'라는 단어와 '빠사나(Passana)란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위(Vi)는 '모든 것', '다양한', '전부'란 뜻이고, 빠사나(Passana)는 '꿰뚫어 보다', '똑바로 알다'라는 뜻으로 '위빠사나'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꿰뚫어 본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위빠사나는 세간의 진실한 모습을 본다. 혹은 분석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여기서 분석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편견(혹은 욕구)을 개입시키지 않고 현상을 현상 자체로 본다는 뜻이다. 즉 어느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고요한 상태를 얻은 후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성, 소멸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을 말한다. 이것은 붓다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으로서 초기 불교부터 매우 중요시되어왔다. 현재에는 주로 실론, 버어마 등 소위 남방불교의 승려들과 재가 신자들에 의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https://meditationwiki.net/wiki/%EC%9C%84%EB%B9%A0%EC%82%AC%EB%82%98   -명상위키에서


 2020년 코로나가 극성이던 해 여름, 파리에서 에딘버러로 방역수칙을 지키며 조심스레 휴가를 온 루씨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나도 3번의 시도끝에(9년 걸림) 채식주의자가 되어 육식을 그만 둔지 1년 반이 넘은 시점이었다. 우리는 명상을 하고 풀을 뜯는다는 새로운 공통점이 생긴 영적성숙을 추구하는 영혼으로 변모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는 12년 전의 아가씨들처럼 밝고 명랑하게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를 극진히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채식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고기는 끊었지만 생선은 도저히 못 끊겠다고 루씨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음식 맛없기로 소문나고 단체로 혀가 마비된 인간들만 사는 것 같은 영국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누가 뭐래도 Fish and chips이다. 섬나라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생선튀김은 혀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맛있다. 그런데 루씨가 한 말에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채식을 한다면 생선을 먹으면 안 되지. 생선도 동물인데."


맞는 말이다. 언젠가 횟감을 구하러 아버지와 수산시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물망을 피해 도망 다니다 결국엔 잡혀 도마 위에서 칼로 토막살해 당한 생선이 흘리던 붉은 피와 마지막 숨을 들이시며 헐떡이던 아가미 그리고 회한과 공포에 젖은 이생의 마지막 눈빛을 보고 마음이 아파  나 때문에 죽은 생선에게 미안해 평소보다 회를 많이 먹지 못했던 기억이 있지만 단백질 공급과 혀를 위해 생선까지 먹는 채식주의자가 된 나는 죽을 때까지 생선을 끊을 수 없을 줄 알았다. 채식에 관한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물고기 자리 그림쟁이가 그린 물고기 그림들. 이제 물고기를 먹지 않아서 물고기 그림도 기쁜 마음으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루씨는 포유류와 조류, 어류를 먹지 않지만 여전히 계란과 치즈등의 유제품은 먹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안(유란채식가)으로 산 지 십 년이 훌쩍 넘었고, 나는 포유류, 조류를 끊고 어류와 유제품은 먹는 페스코테리안으로 3년 살다 귀국 후 지금은 제주도에서 비건으로 살게 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작년 여름,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중 하나인 비건이 되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파리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루씨에게 왓챕으로 연락을 했다.


"루씨, 잘 지냈어? 나 이제 비건이야!"


루씨는 너무나 놀라며 비건이 된 소감을 물어왔다.


"뭐? 진짜야? 정말 놀랍다! 대단해!!! 비건이 된 느낌이 어때?"

"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드디어 동물을 먹지 않아도 돼서 죄책감이 줄어 행복해. 너도 유제품이랑 달걀만 끊으면 비건 될 수 있잖아. 한번 해봐!"

"프랑스에서 치즈 없이 어떻게 살아!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

"한국에서도 김치 없이 못 사는데 난 젓갈 안 넣은 김치를 직접 만들어먹어. 너도 비건 치즈 만들어 먹어봐~"

"응 꼭 그럴게! 부럽다! 나도 언젠가 비건이 되고 싶어."

"너도 할 수 있어~ 나 같은 사람도 비건이 됐는걸."


 캐슈넛과 찹쌀가루 또는 타피오카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비건치즈는 진짜 치즈와 식감이 비슷한 짝퉁치즈로 유럽의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우유가 들어있지 않고 발효를 하지 않아 치즈 특유의 발꼬랑내 같은 냄새는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치즈의 식감을 못 잊는 비건들에게 유용한 대체식품이라고 한다. 치즈를 그토록 사랑하던 나도 1년 가까이 치즈를 안 먹어 살짝 그리운 마음에 비건치즈 레시피를 찾아보고 타피오카 가루를 사다놓긴 했지만 귀차니즘으로 아직 만들어먹어 보지는 않았다. 유제품없이 하루도 살지 못하던 내가 치즈는 물론 아이스크림, 케이크, 빵, 쿠키, 요거트, 생크림 등을 멀리하며 사는 것은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다.


 내가 자연식물식을 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선사해 준 친구 루씨에게 감사하며 언젠가 그녀를 제주도에서 만날 그날을 학수고대한다. 그날이 오면 루씨에게 갓 지은 현미밥과 신선한 푸성귀로 순수 자연식물식 밥상을 만들어 대접할 것이다.



2015년 루시와 함께 만든 설날 만두. 표고버섯, 양파, 두부, 당면, 부추 등을 손으로 직접 빚은 만두피에 넣어 야심차게 만들었다
배터지도록 먹고 같이 살던 플랫메이트들과도 나눠먹었다.


그리운 루씨와 브라이튼


몇년 째 그리고 있는 그림.


더 많은 그림 보러 놀러 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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