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계속 잤다.
보통 아이는 저녁을 먹고 복사를 가지만 다녀오면 뿌듯함과 자신감이 채워지면서 식욕도 올라오는 듯 먹을 것을 찾는다. 그리고 먹으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전 날 신부님께 혼나고 집에 온 아이는 "복사를 할 자신이 없어요.", "성당을 안 갈래요."라고 말했다. "복사를 못하겠다, 성당을 못 가겠다 하는 네 의사는 존중해. 존중하기 때문에 너를 윽박지르고 혼을 내면서 데리고 가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냉담이 되지 않도록 엄마는 계속해서 미사에 같이 가자는 말은 해야 해. 그게 엄마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이번 일이 네가 신앙에서 멀어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 식탁 의자에 겨우 기대어 앉은 모습이 그것 조차도 버거워 보였다. 씻고 자자며 아이를 챙겨 잠자리에 들었다. 꼭 안아주고는 엄마가 사랑한다고, 네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걸로 믿을 테니 너도 네 마음과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 보고 말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이에게 방학 중이라도 아빠가 출근하시는 시간에 일어나서 인사드리고 다시 자라고 하지만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 몇 번 이름을 부르며 깨우다 결국 나만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는 남편 앞에 앉았다. "어젠 나도 마음이 많이 힘들더라." 늦게 와서 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자세한 상황을 묻지 못한 남편에게 문자로 다하지 못했던 자초지종을 전했다. 남편은 신부님이 왜 그렇게 보셨을까, 아이가 오해받을 행동을 한 건 아닐까라고 말했다. 남편의 뜻은 짐작이 되지만 나도 마음이 정돈이 되지 않아서 화가 벌컥 올라왔다. "여보 그런 말은 꼭 애 탓을 하는 거 같잖아."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여전히 잠든 아침. 시간은 흘러서 오전 시간이 끝이 나고 있었지만 아이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아침을 먹고 잠든 아이를 보는데 마음이 무겁다. 명치끝이 꽉 눌린 것처럼 답답하다. 평소 존경하고 좋아했던 신부님이라서 상황이 더 버겁게 느껴졌다.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없었던 일이길 바랐다. 그러니 그럴 수는 없겠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이 일이 우리를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길, 이 순간 성령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했다.
오후가 다 되어서야 일어난 아이는 밥을 먹고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내 말에 "어제 엄마가 교만이라는 단어를 쓴 게 더 속상했어요. 내가 복사단을 하면서 절대 교만하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해서요." 아이의 지적에 놀라고 당황했고 화도 올라왔다. 나는 너와 같이 아파하고 있는데 너는 나를 지적하는구나 하는 유치한 본전 생각에. 그리고 아이가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가 적절하지 못하게 전달했다면 미안하다, 그런데 네가 지금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어색하고 서먹하게 그렇게 말이 끊겼다.
자꾸만 한숨이 난다.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아직은 내 감정들이 정리가 되지 않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