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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Feb 23. 2024

미운

  일주일을 훌쩍 넘어 곱씹어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동생과 통화를 하던 중 나온 말이 시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식 때문에 회사를 다닌다는데 나는 부모님 때문에 회사를 다닌다. 


 그 순간 내 단전 아래서 뭔가가 확 올라와 가슴 부근을 탁 막아버리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기분이 더.러.웠.다. 애써 정신줄을 붙잡고 네가 그만 다니고 싶으면 그만 다니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그 정도 이해하시고 받아들이신다. 우리 엄마 아빠 수준 그 정도 아니야."라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들면 그만둬."라고 하자 꼭 죽을 만큼 힘들어야 그만둘 수 있는 거냐고 되묻는다. "아니, 표현이 그런 거잖아. 그리고 좀 견딜만하면 견디는 것도 필요하지 않아?"  나도 이제 감정을 숨기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감정대로 모난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애쓰며, 대강 통화를 마무리했다. 


 사실은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니 새끼 키우는데 드는 부담은 깃털같이 가볍고, 부모님 생활비 보내는 건 그렇게나 무겁냐고. 멀리 있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않고, 시아버지 생신과 친정아버지 생신이 비슷한 시기라는 이유로 결혼하고 아버지 생신에 맞춰 제 때 내려온 적 한 번 없으면서, 손녀 아프다는 말에 다섯 시간을 운전해 올라가는 친정 엄마가 그렇게나 버겁냐고. 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남아서 온종일 속을 시끄럽게 했다. 


 설을 일주일 남겨두고 통화니까 주가 넘었다. 그런데 아직 나는 그때의 감정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동생의 말을 처음 들었을 나는 얼굴이 붉어졌던 같다. 그건 '수치스러운'에 가깝다. 

출산과 육아를 하며 군무원이라는 직업을 이어가고 있는 동생과 출산 직장을 그만둔 나.

꾸준한 수입이 있는 동생과 들쭉날쭉 하는 수입으로, 그나마도 방학에는 수입이 전혀 없는 나. 

부모님 사는 집의 대출을 내고 갚아가고 있는 동생과 그렇지 않은 나.

나는 은연중에 나와 동생을 저울에 올려놓고 효도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올라간 저울의 자리가 위로 휙 들리는 것 같아 순간 부끄러웠다. 평소 동생이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 경제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구나 하며 안도하는 나는 본 것 같아, 책임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는 내가 비겁하게 느껴져 수치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억울함도 있었다. 우리 삼 남매는 각자 월 30만 원씩 모아서 부모님 생활비로 45만 원을 보조한다. 나머지 금액은 비상금으로 모아두며 부모님 건강검진, 보약 짓기, 연 중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할 때 이용한다. 삼 남매 중 유일하게 부모님과 같은 지역 10분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아이가 어릴 때 부모님께 도움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또 그만큼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따로 모시고 식사를 하거나 병원을 동행하는 일도 많다. 그러니까 부모님에 대해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동생이 실제로는 경제적인 부분 외에 어떤 부담을 안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동생에 대한 내 감정과 태도가 좋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꽤 오랫동안 좋지 않았다. 결혼 전 타 지역 숙소에서 살면서 허구한 날 엄마를 불러 올라가게 하는 동생이 미웠다. 그렇게 엄마가 가시고 나면 남은 아버지를 챙기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엄마가 식사 준비를 해 놓고 가도 엄마가 없는 사이, 엄마가 바라는 대로 친정을 들여다보고 설거지를 해 놓았다. 아빠가 한 명의 성인으로서 제 몫을 못했고, 엄마가 장녀에게 지나치게 기대를 했던 것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르다. 나와 동생 둘의 나이를 합치면 80이 넘는데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겠나. 나는 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엄마에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나도 부족한 사람이니까 잘 넘기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엉키고 설킨 감정이 올라오면 내 감정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면서 '이 쯤은 화난 거구나, 이쯤은 부끄럽구나, 이 쯤은 당혹스럽구나, 이쯤은 미움이구나.' 하며 어림직작할 뿐이다. 


  엄마는 다음 주 동생에게 가신다. 동생 부부 둘 다 출장과 당직이라 여섯 살 난 조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동생이 부탁했다고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던 지난주, 엄마는 무릎이 아프다며 약을 하나 꺼내 보여주신다. 제부가 미국 출장에서 사 온 약인데 이 약을 하루에 몇 개 먹으라고 적혀 있는 거냐고. 지난번 동생네 다녀오시면서 잠시 잠깐이지만 조카를 안았다가 내렸다가 하는데 무릎이 아프더라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또 혼자 걱정을 하고, 속상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동생에게 할 순 없다. 엄마가 원하지 않으시니까. 

동생은 내 아이가 어릴 때 "엄마 무릎 주사 맞고 (조카) 업어서 무릎 아팠잖아."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출산 직후 남은 대학원 학기를 마치느라 일주일에 이틀 저녁은 부모님께 아이를 부탁해야 했던 그때의 미안함이 수치스러움으로 올라온다. 


  정리가 안되어 몇 주를 복잡하던 머리 속이었다. 적다 보니까 '동생은 과연 무슨 뜻으로 저 말을 한 걸까?' 궁금해진다. 동생이 이러이러한 이유일 것이라고 나의 단정지음으로 그저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동생을 만나게 되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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