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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29. 2023

작업과 육아사이

딸아이와의 전쟁

토요일이다. 하루종일 딸아이와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할머니집과 엄마 작업실 중 어느 곳에 가겠느냐는 말에 딸아이는 변함없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실을 선택한다.

편안하게 할머니집에 있으라고 설득을 해 보아도 그녀의 선택은 단호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생략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날씨가 제법 추워서 걱정이지만 따뜻하게 입고 집을 나섰다.     


첫 번째로 마트에 들렀다.

점심때 먹을 쌀국수와 빵 그리고 음료수를 샀다.     


그리고 두 번째 딸아이가 꼭 가야 한다는 곳. 다이소.

그곳에서 아이는 클레이와 다트놀이를 샀고, 나는 마스킹 테이프와 붓펜을 샀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도서관.

10권의 책을 반납하고 10권의 그림책을 골랐다.

딸아이도 자기가 마음에 드는 책을 3권 골랐다.


도서관을 나오니 10시 30분이었다.     

서둘러 작업실로 향했고, 작업실에 들어서자 바로 난로를 켰다.

그리고 물을 끓였다.


우리 모녀는 따뜻한 핫쵸코를 한잔씩 마시며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핫쵸코가 맛있다며 이따가 또 먹겠다는 아이에게 하루에 한잔 이상은 안된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아이가 앉아서 놀 의자가 불편해 보여 의자를 치우고 바닥에 돗자리를 두껍게 깔아주었다.

아무래도 신발 벗고 바닥에 앉아 노는 것이 오랫동안 편안할 것 같아서였다.

돗자리에 앉은 아이는 소풍 온 것 같다며 신이 나서 마트에서 사 온 군것질 거리를 먹기 시작했다.    

 

엄마 작업할 땐 말을 시키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고선 작업에 몰두했다.

민화 작업에서 오늘은 하늘을 두 번째 칠을 입혔다.

그리고 캘리그래피 숙제를 했다.

작업을 하는 내내 아이는 엄마를 수백 번도 더 불러댔다.

아. 몰두라는 걸 하고 싶다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작업실에 따라오지 말라고 엄포도 내렸다.

하지만 효과는 그때뿐.     


분위기 탓인지 실력 탓인지, 생각보다 글씨가 잘 써지지 않았다.

기억, 니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아이가 다가와 말한다.


“엄마도 가나다 공부하네”

“응. 잘 써야 하니까 엄마 손 부딪히면 안 돼.”

“알았어. 나도 가나다 써야지”     

그러고선 종이를 들고 와 옆에서 글씨를 쓴다.


자꾸 나의 손과 부딪치는 딸에게 야단을 쳤다.

“이러면 집에 가는 시간이 자꾸 늦어줘!”     


딸아이에게 자꾸 짜증내서 미안하고, 해야 하는 과제는 잘 써지지 않아 허탈하고.

썼던걸 계속계속 썼다. 마음에 드는 모양새가 나올 때까지 쓰고 또 쓰고.

월요일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끝내야 했다.


화선지는 쌓여가고, 마음에는 안 들고, 딸아이는 기다리고.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몇 장의 글을 확인하고서는 붓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3시 30분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4시에 집에 도착해 친구와의 약간의 트러블을 전화로 정리했다.

오지랖 넓은 친구가 생각해준다고 한 행동이 나를 조금 거슬리게 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눈치 주는 걸로 오해를 했다.


그녀와의 몇 번의 통화로 우리는 마지막엔 웃으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오해를 바로바로 풀 수 있어 어른의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하며 나는 우리의 대화를 높이 평가했다.     


역시 난 나에게 참으로 후하다.

타인에게 후하고 자신에겐 깐깐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 반대다.

그래서 어쩌면 큰 스트레스 없이 긍정적으로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나에게 후 한 만큼 타인에게도 후하게 행동하자.

그게 두루두루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 바로 옆에 있는 딸에게는 왜 이럴까.

생각처럼 잘 되지가 않는다.   

  

엄마의 꾸지람에도 언제나 해맑은 아이다.

장난감을 정리해라고 해도 끝끝내 정리를 하지 않고 지금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또 정리는 내 몫이다.


흩어진 장난감들을 제자리에 정리를 하며 아이가 얼른 크기를 기대해 본다.

아휴. 좀 크면 잘하겠지.     


청소를 하고, 저녁을 먹고, 그림책 세 권을 읽었다.

8시가 넘어 남편이 퇴근을 했다.

많이 지친 모습이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안타깝다.     


지친 남편은 라면과 함께 소주를 1병 마셨다.

상차림을 도와주고 나와 딸은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홀로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유튜브를 봤다.     


토요일인지 평일인지 구분이 안 되는 저녁의 모습이었다.     

내일도 출근하는 남편에게 일찍 자라는 말을 남기고 딸아이를 재웠다.     

딸아이와 함께 그대로 잠들고 싶지만 해야 할 미션들이 남아 있기에 뒤늦게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켠다.     


오늘도 일만보 걷기는 실패.

경제기사필사는 완료.

글쓰기 완료.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실패.

독서하기 조금 완료.   

  

아. 실패와 완료가 반반이다.

이 정도면 뭐 만족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나에게 너무나 후하다.

만족도가 아주 높다.     


내일도 하루종일 딸아이와 붙어 있어야겠지만 오늘과는 다르길.

짜증과 화 대신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하루를 보내보자.     

정말 맘껏 웃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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