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며 집에 있을 계획이었다.
다음 주는 계속 밖으로 돌아야 하기에 오늘만은 밀린 집안일을 하겠노라 계획을 잡았다.
편안하게 딸아이와 늦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엄마 오늘 어디 나갈 거야?”
“왜?”
“집에 있고 싶어서”
“그래 그냥 집에서 대청소나 하자”
“알겠어 내가 도와줄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너의 장난감 네가 다 정리해”
청소를 하기도 전에 우리는 티격태격이다.
누가 보면 딸이 아니라 친구 간의 대화인 줄 알알 것이다.
딸아이는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더니 화장실로 물놀이를 갔다.
매일 반복적으로 또 내가 정리를 하고 있다.
큰맘 먹고 아깝지만 오래되고 잘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을 정리를 했다.
딸아이는 일요일에 아빠가 일하러 가서, 신나게 놀아주는 아빠의 부제에 심심했는지 아빠에게 계속 전화를 하겠다고 보챈다.
겨우겨우 달래 10번 할거 한번 통화를 하게 해 주었다.
딸아이는 아빠에게 언제 퇴근하냐를 계속해서 물어댄다.
많이 늦는다는 아빠의 말에 실망한 딸아이를 달래려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그림책을 3권 읽었다.
오늘은 일찍 씻기고 일찍 재우려 했는데 결국 평소와 비슷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를 씻게 하고 잠시 놀고 있을 때 강아지인 미미의 털을 정리해 주고 목욕을 시켰다.
딸아이와 그리고 새끼고양이 때문에 언제나 뒷전이 된 늙은 강아지 미미.
며칠 만에 앙상해진 몸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발톱을 자르고 몸을 말려주는데 왠지 이 녀석 목욕이 이번이 마지막이 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식욕도 살아있고, 집구석구석 먹을게 떨어졌나 잘 돌아다니긴 하지만,
늙어서 귀가 안 들린 지 오래되었고, 이빨도 거의 다 뽑혔는지도 좀 되었다.
먹을 걸 밝히는 습관 때문에 사료를 다르게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목욕을 끝내고 나서 나는 미미의 사료를 물에 불려서 주었다.
녀석이 너무나 잘 먹는다.
그동안 먹기 힘들었을텐데. 주인은 알아주지도 않고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래도 어김없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랑을 갈구한다.
녀석은 안겨있는 걸 좋아하는데 아기 고양이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 한 번도 안겨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고양이가 일 순위였다.
아니 정확히는 딸아이가 일 순위, 두 번째가 고양이인 짜장이.
어느새 세 번째로 밀려난 미미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주방에 있으면 항상 발 밑에서 알짱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들어낸다.
그런 모습이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자신을 좀 알아달라는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젠 걸음걸이도 어정쩡하고, 맑은 눈동자도 사라졌지만, 언제나 사랑의 눈빛을 나에게 보여준다.
이젠 미미와 짜장 이를 끝으로 동물들을 절대 키우지 않을 것이다.
둘 다 유기견, 유기묘지만 이젠 밖에서 동물을 만나더라도 집까지는 데려오지 않으리라 맹세를 해본다.
이 녀석들과 함께 살면서 주는 건 사료뿐인데, 아낌없이 주는 주인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넘친다.
그런 녀석들과의 아픈 이별을 생각하면.
이별을 미리 왜 생각하냐고 말하겠지만. 난 이미 한 마리의 유기견인 동이를 무지개다리로 보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아프고 힘든 과정을 몇 번 더 겪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나 잘 안다.
아직도 나는 동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울컥하고 마음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슬픔이다.
벌써 5년이 지났음에도.
갑자기 앙상해진 미미 하나로 떠난 동이까지 생각하게 된 하루의 마무리는 슬프다.
이별은 언제나 슬픈 것.
이 녀석들과 많이 슬프지 않은 이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그리고 잠든 딸아이와 이제 막 4개월이 지난 짜장이를 보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키울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