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저는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은 있었지만, 일도 그런대로 잘 풀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날따라 새벽에 눈이 떠지더라고요. 거실로 나와 물 한 잔을 마시고 책을 펼쳤습니다. 고요하고 조용한 새벽이었습니다.
한참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나더니 어떤 아저씨가 “불이야”라고 외치더라고요.
순간 너무 깜짝 놀라 자는 아이 방으로 가서 아이를 깨우고 급히 잠바를 입었습니다. 현관 서랍장에 있는 마스크를 급히 쓰고 아이와 뛰었습니다. 아이는 채 운동화를 신지 못해 잡고 뛰고 있었습니다.
4층 정도 내려갔나? 검은 연기가 보이더니 순간 제 시야와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길이 안 보여 아이가 다치면 어쩌지?’, ‘연기에 질식해서 정신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아이는 아직 어린데.. 무서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을 오직 계단 난간에 의지하며 내려갔습니다. 숨쉬기가 힘들어 마지막으로 큰소리로 “살려주세요”를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희미한 빛이 보였습니다. 아이와 손잡고 있는 힘을 다해 뛰었고, 다행히 그 빛은 세상과 통하는 빛이었습니다.
119와 구급차는 이미 와 있었고, 분주하게 불을 진압하러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고, 아이를 보니, 연기 그을음에 군데군데 얼굴과 마스크가 검게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는 거지꼴을 하고 언니네 집으로 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우리한테 연기 냄새가 심하게 났는지 사촌 조카가 창문을 열더라고요. 목욕하고, 언니와 조카에게 옷을 빌리고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다친 데 없이 살아 돌아왔구나. 애써 위로하며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 난민처럼 한 달 째 떠돌이 생활을 했고, 저는 화재 사고에 이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할 뻔했고, 불안장애를 넘어 숨을 쉴 수 없는 공황장애까지 생겨버렸습니다. 거기에 멘탈이 무너져 1년 동안 열심히 모아온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잔잔했던 제 일상이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이혼하고, 일을 하며 아이를 힘들게 키우고, 불안장애를 극복하려고 열심히 산 저였습니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 일도 줄이고, 욕심을 내지 않고,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평안한 일상만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항상 밤마다 기도했네요)
근데 제가 불행을 막으려고 해도 불행은 일어났고, 사고는 순식간에 어두운 먹구름으로 제 일상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겪은 일 중에 단 하나라도 겪지 않고, 잘만 사는데 왜 저한테는 이렇게 가혹한 건가요? 더는 욕심부리지도 않고 평온한 일상만 달라고 했는데 저에게는 그게 욕심인 건가요? 신에게 물었습니다. 울부짖었습니다.
몇 년을 힘들게 불안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는데, 공황까지 오니, 어떻게 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걸까?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우울과 공황, 이명에 시달렸고, 새해가 되고, 저는 마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부터 시작해서 유전적인 성격, 신체, 재능 모든 것들이 다 정해지며 태어났다. 그러니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앞으로 또 어떤 사고가 나서 널 힘들게 할지 몰라. 그때도 남들과 비교하며 세상 탓만 하며 살 거니? 이제부터는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밖에 나와 살아보자.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니,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살아자.
다시 또 불행이 덮친다 해도, 또 이겨내면 되는 거야. 울부짖고, 매일 슬퍼하고, 우울해도 괜찮아. 그러다 보면 괜찮아질 거고, 너는 또 이겨 낼 거야. 너는 강해. 이제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잖아.라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제 말대로 시간이 지나니, 다시 평안한 일상이 찾아왔습니다. 바닥을 찍었으니, 또 저는 더 높이 올라갈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분명 당신은 강하니 꼭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다소 따분하고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우울해하시는 분들은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감정메이트입니다.
이런 사유로 저는 앞으로 숨지 말고, 열심히 또 살아보려고 합니다.
당분간은 작년에 묵혀놨던 원고 정리와 유튜브에 몰입하려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올렸던 영상 중 좋았던 부분은 이렇게 브런치에도 올리겠습니다.
간간이 제 소식을 전할게요.
그동안 구독 끊지 않고, 기다려준(기다린 사람은 많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ㅎ)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