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정메이트 Mar 06. 2023

그녀가 미친 듯이 부러워 그녀처럼 살아봤다.

1년간 다른 삶을 살아보았습니다.

별거를 하고, 아이가 돌이 되자 저는 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결혼 전, 자기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일했던 곳은 이미 20대부터 경력을 쌓아온 분들과 대학을 졸업해서 2~3년간 일을 하고 있던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서른한 살 저는 아무 경력 없이 일을 시작한 신입이었습니다. 그저 자격증이 있어서, 제 진로와 흥미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생계를 위해 들어간 곳이었습니다.


일도 익숙지 않아, 힘든데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힘들더라고요. 파벌을 만들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하고,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파벌에 속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원장님도 편애하는 직원은 대놓고 혜택을 주고, 눈 밖에 난 사람은 멸시와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저는 고된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 육아하고 아이를 재우면 항상 들어가는 블로그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세 살 위 정도로 보였고, 탄탄한 직장과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서 그녀는 엄마라는 존재가 상상 이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녀 관계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산산조각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주체할 수 없는 허망함과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그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며, 일 외의 시간에는 자기를 위해 씁니다.

요가를 좋아해서 새벽에는 요가를 가고, 집에 와서 건강식으로 밥을 해 먹고, 글을 씁니다. 점심쯤에는 낮잠을 자다 밖으로 산책을 갔다 옵니다. 저녁을 먹고 조용한 밤에 책을 읽는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삶이 미치도록 부러웠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과 사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시간. 그녀의 블로그를 염탐하면서 대리 만족을 하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야지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는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일이 잘 풀렸고, 더 욕심을 부려 돈을 벌 기회가 있었으나, 저는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온 저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건 바로 '그녀처럼 살아보기'였습니다. 매달 들어올 수 있는 돈을 구축했고, 그녀처럼 하루에 채 1시간도 일하지 않고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도 어느 정도 커서 제 손길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 학교에 다니는 중에는 저를 위해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 1년간 그녀처럼 살아보았습니다.


 아침에는 제가 좋아하는 숲에 가고, 집에 와서는 목욕과 집 안 정리를 깨끗이 하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멀리 나가 맛집도 가고, 예쁜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육아해야해서 내 시간이 없었지만, 오전 오후를 정말 저만을 위해 썼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좋더라고요. 사람들도 안 만나고, 어떠한 스트레스 없이 오직 저만을 위해 하루를 보냈습니다.


석 달이 넘어가자, 저는 불안장애 증세가 악화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뭔가 모를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들 틈에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은퇴해서 독거노인이 되어 할 일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일상은 잔잔했지만, 제 마음은 파도처럼 요동을 쳤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딱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그럼, 부자가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는 내가 부자가 돼서 뭐 하지? 내가 건물이 있고, 집이 몇 채 있고, 현금이 어마어마하게 있다고 해도 나에게 이게 다 뭔 필요가 있지? 그냥 아이와 행복하게 살 정도와 노후에 쓸 금액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망상이 심했습니다. 부자 되기는 쉽지 않은데) 그럼 난 부자가 될 필요가 없는데 왜 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 딱 적당한 선에서 일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이렇게 아이만 키우다 내 인생은 육아로 끝나는 건가? 알 수 없는 물음표가 머리에서 한없이 빙빙 돌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미친 듯이 부러워 그녀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저한테는 그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물가, 고금리 시대가 되고, 경기침체가 올 수 있을 정도로 경기가 안 좋아지자, 저에게도 위기가 왔습니다. 하던 일이 잘 안 풀리고,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지금은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돈을 더 벌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번아웃이 와서 그녀를 미치게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솔직히 행복합니다. 뭔가 아이디어를 내서 그것에 맞춰 준비하는 시간도, 시간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바쁘게 보내는 것도, 앞으로 내가 얼마큼 성장을 할까? 기대감으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지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해야겠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삶이어도 자기한테 맞는 삶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찾아가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싶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