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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메이트 Aug 31. 2024

데드리프트가 뭐라고

작년 가을. 새로운 일을 하게 된 나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일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걸까. 아침에 일어나는 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알람 소리에 부랴부랴 벌떡 일어나는데 순간 정신을 잃었다. 눈에 떠보니 이불 위였다. 깜짝 놀란 아이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기절했는지도 몰랐다. 일어나보니 어지러웠고 잠깐 중심을 잃고 쓰러졌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은 달랐다. 엄마가 아~굉음(설마 내가 그런 소리를) 소리를 내며 기절했다는 거였다. 3초간 누워있다가 정전된 불이 켜진 것처럼 눈을 떴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를 달래고 학교에 보낸 후, 처음 있는 몸의 이상증세에 나는 걱정이 앞섰다. 바로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는 큰 이상은 없었으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보다 훨씬 높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운동을 하냐고 물어봤다. 나는 매일 걷는데요. 자신있게 대답했다. 걷는 것은 노인분들이 하는 거고, 그건 운동이 아니라고 나에게 일주일에 3번 이상 몸에 땀이 뻘뻘 흘릴 정도로 고강도 운동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3개월 후에 다시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유독 혈액 관련해서 안 좋은 외가 쪽 유전자가 마흔이 넘으니, 나에게도 찾아왔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뇌출혈, 심근경색 등 한순간에 저세상 사람으로 가는 거 아냐. 이렇게 생을 마감할 수 없지. 운동을 하자. 어떤 운동을 하면 좋지. 근력 운동에는 헬스가 최고지. 나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을 배워야지 하면서 한참을 미뤘던 내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살고 싶어 쏜살같이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갔다.

 헬스장은 여느 때와 같이 대폭적인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일단 6개월만 해볼까 했는데 얇디얇은 귀 때문에 초심자로서는 부담스러운 15개월 헬스장 이용권을 끊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뇌출혈의 위험이 있다는 나의 정곡을 콕 찌르는 바람에 6개월 PT도 덜컥 신청해 버렸다. 그리곤 나는 합리화했다. 그래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 투자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확 몰아서 했다고 치자. 남들 다 가는 피부과도 안 갔는데 이 정도 나에게 쓸 수 있지. 운동은 한 번 배우면 계속 써먹을 수 있잖아. 그렇게 난 거액의 목돈의 뽕을 뽑자는 마인드로 열정적인 학생으로 변신했다.      

 나의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차츰 헬스 관련 영상으로 가득 찼고, 매번 수업 때마다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헬스 일지도 쓰자고 굳건히 마음먹었다.(일지 쓰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첫 수업 날. PT코치님은 우선 나에게 인바디검사를 하자고 하셨고. 그동안 나의 잘못된 식습관을 들킨 것처럼 지표는 낱낱이 나의 안 좋은 신호들을 나타내고 있었다. 체중과 근육량, 체지방 비율이 근육량이 많은 D형이 건강한 몸인데, 회원님은 체지방이 압도적으로 많은 C형이네요. 앞으로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열심히 해보자는 파이팅넘치는 말에 얼마나 긴 고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약간 긴장이 됐다.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은 체육이었다. 80%의 수포자를 낳은 가장 싫은 과목 절대적 최강자 수학이 아닌 체육이었으니 내가 얼마나 과격한 운동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내가 마흔이 돼서 남성 호르몬 운동의 끝판왕 헬스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 으아합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기합 소리 한 가운데 나지막이 끙끙 소리를 내며 열심히 무게를 치고 나를 보면 신기하다.


 운동을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운동은 데드리프트였다. 여기서 과거형으로 말한 것은 지금은 아니다. 그 이유는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데드리프트는 엉덩이와 허벅지, 코어의 힘으로 바닥에 있는 바벨을 들어 올리고 다시 내리는 운동이다. 나의 고질적인 거북목을 교정할 수 있는 운동이라 좋아했었다. 10Kg도 힘들게 들던 내가 20, 30, 45Kg까지 괴력의 힘을 쓰면서 들어올릴 때마다 희열이 있었다. 코치님은 그런 나를 더 자극하듯이 100Kg까지 들어보자며 무게를 올렸다. 너무 잘하려고 했던 것일까. 점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도전하면서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다가 허리가 삐끗하면 어쩌지. 나 이거 과연 들 수 있을까. 나 못 들 것 같은데. 이런 불안이 슬금슬금 올라오더니 이제는 데드리프트 바벨만 봐도 공포의 물건이 돼버리고 말았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 나는 데드리프트 앞에만 서면 작아졌고, 무게를 점점 낮추는 퇴행까지 하고 말았다.

 좋아했던 데드리프트가 갑자기 싫어지면서 헬스도 가기 싫어졌다. 그렇게 나에게 헬태기가 오고 말았다. 선생님은 움츠러든 나를 직감하셨는지 이렇게 조언하셨다. 저 역시도 무게의 부담감으로 몇 달을 좀 더 가벼운 무게로 운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조급해하지 말자. 마음을 다잡고 계속 시도했어요. 안되면 말고, 될 때까지 해보자. 그러더니 몇 달 후 목표했던 무게를 치더니 그 이후로 쑥쑥 무게를 칠 수 있었어요. 회원님도 할 수 있어요. 언제나 강인할 것 같은 코치님의 말을 듣고 나는 용기를 얻었다. 지금은 무게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횟수를 늘리며 하고 있다. 전보다 빠르게 근육량이 늘지는 않지만,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단기간에 몸을 만들어 바디프로필을 찍을 것이 아니고,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 꾸준히 운동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운동 시작은 순전히 자의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 하게 돼버렸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이 돼서 처음은 좌절했지만, 지금은 운동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한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운동으로 마음을 다스렸고, 언제나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급한 성격에서 느긋이 꾸준히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인드가 바뀌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를 단정 짓지 않고, 조금씩 도전해 보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작고 소중한 내 근육의 호기심도 생겼고, 내 몸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는 운동이 나의 삶에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오늘도 나는 잘 안되는 데드리프트에 씨름하며 좌절하고 있지만, 데드리프트가 뭐라고.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지 라는 마인드로 운동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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