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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Apr 03. 2017

양각


나의 시간을 움켜쥐고 있는

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내게 거짓을 말하던 그대의

뒷모습을 향해 기도합니다.

조용히 스쳐가는 그대의 쓸쓸함

마주 보며 기도합니다.

나와 오롯이 하나가 되어주지 않는

그대의 무심함에 기도합니다.



그대의 시간을 온전히 곁에 두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 세상 단 한 번뿐인 미련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과 나의 사랑이기를 기도합니다.



수십 년이 흘러 당신이 늙고 나도 늙는

쉼 없는 시간의 뒷길 그 어딘가에서


나의 꿈속 멋스러운 상점 딸아이 손을 잡고

함께 들러 선물을 골라주던,

흰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중년이 된

당신과 우연히 스쳐 지나갈

미래를 기도합니다.



절대적인 존재가 내 삶에 큰 선물을 주려거든

그저 당신과 우연히, 한여름 내리는 소낙비처럼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더라도

단 한 번만 더 스쳐 지나 칠 수 있는

찰나의 기적을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조용히 창가로 몸을 기대고 속삭여봅니다.



너무나도 어린 마음에 만나게 되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커져서


언젠가부터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서로의 마음에 삼켜지면 이제는 영영 볼 날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 마음 사이에서 위태롭게 걷던 우리 두 사람.



마음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숨겨두고

어딘가에서 주워온 이야기만을 늘어놓던


청춘의 이름보다는 덜 빛나던 우리 둘의

또 한 번의 짧은 찰나를 염원하며 기도합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자꾸만 아쉬워

어딘가를 뒤돌아보는 것이

나뿐만이 아닐 거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대 소식이 내 곁을 맴돌며 떠돌 때

사실은 목적지가 내가 아닐까 하고

걷잡을 수 없게 가슴이 뛰어버리는 것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대가 내게

"우리는 서로를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던 그 말의 참 뜻이 사실은 그대가

나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도 그대를 잊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잊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대의 존재를 느끼며 나를 집어삼키는

그 마음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그대도 역시 우리의 거리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서서 나의 두려움을

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없던 그대가 더 아팠습니다.

이제와 압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던

그대가 더욱 불안했습니다.



나는 후회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아픈 말을 내뱉던

어린 날의 나를 후회합니다.

그리고 그대 역시 내게 벌을 주듯

자신의 마음에 검은 천을 덮어 눈빛을 숨길 때

"지금처럼 당신은 영영 아프지 않을 것"이라며 발끝을 끌며 길머리를 돌렸던 그 날,


그날 밤에 그대가 온 거리를 헤매며 나를 찾았던 것을 사실은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는 후회합니다.



'조금만 더 사랑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합니다.

'조금만 더 내려놓을

용기가 있었더라면'하고 후회합니다.

'조금만 더 투명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하고 후회합니다.




여자에게 첫사랑이란 것이 있느냐 물었던

그대의 그때 그 물음에  "내 첫사랑은 아마 

영영 당신일 것" 이라 대답했던 그 날,


"그러니 구겨지고 때타더라도 언제나처럼 소중한 친구의 편지처럼 서로의 곁에 있자"하고

덧붙이지 못한 것을 나는 후회합니다.




나의 꿈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악몽을 꾸었다'라고 툴툴대면 말없이 안아주던

그대가 문득 그리워져서 이따금

설렘을 빙자한 미련으로

저 먼 시간의 내 미래 꿈속에 나타나 주는 것을

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누구보다 사랑이 두려웠을 그대가

사랑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말하던 그날을 아프게 기억합니다.



수십 번을 되돌아가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날의

풍경을 애써 지우고 뜯어내고 채색해봐도

깨어나면 결국 꿈속이었음을 깨닫고

무너지고 울어버리는 이 먼 곳에서

그대를 향해 기도합니다.



우리 그 날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꿈속에서 내가 사고 싶어 하던

목도리 값을 몰래 계산해두고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과 낳은 예쁘고 조그맣던 딸아이의 손을 잡고 저 멀리 흐려져가던,

서로를 아는 체 하지 못하고 곁눈질로 바라보며 조용히 목례를 건냈던 그 날.


당신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겨우 울음을 참았지만

꿈에서 깨어보니 온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었던 그 날.



내가 본 나의 미래의 그 나무 빛 가득한 가게에서  

우리 그렇게 스쳐가듯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기로 합시다.



나는 그 미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미래에 당신을 스쳐갈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시간에 내가

슬프게 묻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모든 사랑을 기도합니다.


진정 사랑하면 다른 사랑을

응원해줄 수 없다는 그대의 말에 반박하듯

나는 그대의 모든 사랑을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함께해준 그대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남은 마음을 쓰겠습니다.

미련이니 미련답게 그대에게 주고 싶었던 만큼의 마음을 과거에 흘려보내며 지나가겠습니다.



그 가게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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