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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Feb 06. 2017

꽃을 선물하는 이유

꽃이 아름다운 이유

꽃이 왜 아름다운지 느꼈던 순간다.



너의 귀한 고백을 돕기 위한 미사여구로 준비된

너무나도 아름답던 붉은 장미꽃 다발을 받아 들었던 그날.




내 곁에 앉은 너의 존재가 너무 크게 느껴져

겁에 질린 것처럼 두근거림에 눌려 덜덜 떨던,

그런 이 있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나의 눈길 끝

이따금 걸리던 너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것을 보는 듯

흥미롭고 장난스러워 보였었지.


너의 그 표정마저 나에게는

얼마나 간질거리는 것이었는지 너는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게는 아직도

나무 목판에 새겨진 양각처럼

얼마나 입체적으로 그리고

시시때때로 달려드는지 너는 모른다.



'어슴푸레한 밤하늘'이라는 말의 정확도에 대해서

국문학을 공부하는 수학자처럼 감탄했던 날이었고

'이미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는' 내가 '연애'가

무언지 깨닫기에도 너무나도 알맞은 시작이었다.



사랑에 관한 관용어들이 모두 내 얘기처럼 느껴지며 손끝에 걸려 대롱거렸고

세 뼘쯤 너와 떨어져 앉아있으면서도

나를 둘러싼 공기층에서 너의 존재가 느껴지기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는 그런 날이었다.



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가 너의 곁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것들이 익숙지가 않아서 

횡설수설대는 나에게 너는 좀 더

가까이 앉으라며 내 어깨를 끌어

나를 바짝 당기고 곧 너도 더욱 가까이 다가와

의자 가운데에서 균형을 맞췄다.



흔들흔들, 한 번만 발을 구르면 앞뒤로 흔들리며

한참을 나를 기분 좋게 하던 그 그네의자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고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둘을 가운데로 몰아 어울림을 맞춰 앉게 할 정도로

너는 그렇게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렇잖아도 세 뼘 너머의 네가 두려워 덜덜 떨다가

바짝 끌어당겨져 네 곁에 살을 맞대고 앉으니

어쩔 줄을 몰라 고개만 연신 좌우로 기웃대고 발끝을 까딱 대던 나에게 "왜 그래? 기분 나쁜 일 있어?"라고 질문하던 네가 얼마나 재밌고 우습던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네가 알아챈 '기분 나쁜 일'이라면

나는 그때 얼마나 너를 덜 좋아했어야 했는지.


'나는 떨고, 너는 걱정하고' 그 미묘하고 우스꽝스러운 공기의 흐름이

나는 귀엽기도, 아프기도, 따뜻하기도,

그리고 어지럽기도 했다.


애꿎은 꽃만 만지작만지작 대며

이상한 표정을 내내 하고 너와의

'첫 데이트'란 것을 마치고 나서

내 방으로 돌아오니 그 연약한 꽃잎

얼마나 꾹꾹 쥐어짰는지  손가락 모양대로

색이 변해 꽃잎 몇 장이 검게 죽어있었다.



그와중에도 꽃잎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누가 본 사람이 없나 연신 주위를 살피고는 얼른 드라이플라워를 한다며

검게 변한 것까지 모두 취해 꽃잎을 따서 이리저리

창문가에 부지런히 널어놓기 시작하던 도중,



때마침 잘 들어갔냐며 걸려온

네 전화에 화들짝 놀라

"꽃잎을 말리려고 하고 있다"며

묻지도 않은 물음에 답을 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를

마디마디 끊어내어 손가락 끝에 묻혀서

검게 변한 꽃잎에도, 멀쩡한 꽃잎에도

공평하게 흘려내리고서


"꽃 선물이 너무 고마웠다"라고

옅게 웃으며 덧붙인다.



빛의 입자처럼 틈새를 비집고 새어 나가려는 듯 따갑고 괴로운 마음을 못 이겨 괴롭혔꽃잎인데도,


손가락 끝에 걸린 나의 어린 마음에 눌려 검붉게 색이 변해 처음의 빛깔을 잃어버린 꽃잎인데도,


어쩌면 담고 있는 의미는 어디 하나

상처 난 곳 없이 멀쩡하게 지키고 있는지,

한결같이 든든하고 아름다웠다.






그 시기에 알았다.

사랑을 하면 왜 을 선물하는지,

사랑을 할 때는 왜 받은 꽃을 말리는지,

그리고 사랑이 끝나면 왜 말린 꽃을 버리는지.




그 여리디 여린 생명들이 그의 마음을

잔뜩 머금고 다발로 내 품에 안겨 올 때는

감정 이상의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지며

밀려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 중에 가장 연약하고 여린 것인 꽃을 선물하고,

그렇게 품으로 받아 든 꽃을 귀하게 펴서 말려 투명한 통에 담아내며,


아파서 잊어야 할 때는 그토록 귀하게 말려둔 꽃을

여기저기에 흩뿌리며 보내 주는 것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꽃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무심코 느끼게 되던 때는

역시나 그런 때였던 것이다.



나의 마음이 나를 넘어 이리저리

새벽의 안개처럼 넘실거리며 퍼져나갈 때,

흩어져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당황하던 자신만이 자신 속에 우두커니 홀로 서서 그 마음을

멍하니 지켜봐야 하는 그런 때,



그런 때에 받아 드는 꽃들이 알려준

'꽃의 진정성' 그것이 와 닿았던 것이다.

그래서 꽃은 아름다우며, 우리는 꽃을

인질 삼아 마음을 뒤로 숨겨 불쑥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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