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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Nov 17. 2017

해파리에 쏘인 날

때론 약간의 통증이 활력을 재활시킨다.


지난 여름 휴가로 동남아에 갔다.

공항을 나오자마다 풍겨오는 낯선 냄새와

낯선 글자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 속 세상처럼 나를 쉴새없이

쟙아끌어 당겼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덥고 습한 날씨.


모든 것이 기분 나쁘지 않게

신선한 낯설음으로 성큼 다가왔던 날이었다.


평소라면 질색을 했을 두터운 습기가

숨을 턱턱 막기는 커녕 왠지 몽환적으로

느껴지던 그런 나라에서 나는

새로운 을 선물받는 기분이 들었다.


지치고 힘들었던 치열한 그 어떤 과거.

그것을 한 순간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나의

존재에 대한 한없는 자괴감과 억울함이 번갈아

나를 집어삼키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나는 다만 몇시간을 날아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된것처럼,

그리고 그래도 될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이곳의 그 누구도 나에게 큰 아픔을 줬던

사람보다는 절대로 더 나쁠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인위적인 안식이 찾아왔다.


몽환속에서 헤매이는 나.

내 환상속에서 그 안개를 연기하는 이 나라.

잠시 백일몽에 빠진 척하는 내 슬픔들까지도

모두 다 일순간 진짜가 될 수 있었던 곳.


도착한 곳에서 제법 크지만

수면위를 소금장이처럼 통통 튀며 가는

하얀색 통통 배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해간다.


슬픔의 무덤.

사람들이 파도를 타며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는

섬 마을로 깊숙히 들어가본다.



멍해진채로 경치를 구경하며 한참을 달리니

조금은 낯설은 환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신기루처럼 한 순간에 선착장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실은 이 보인다.



눈을 깜빡이면 없던 일이 될 것만 같아서

뚫어져라 응시해보지만 실제인 것이 틀림없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의 구조물들이


마치 장난감 블록으로 세워진 듯 보여서

내 머릿속이 애타게 찾아 헤매는

현실감을 짙은 색감으로 억누른다.


그곳에서는 내가 엄청난 이방인이 되었지만

나는 그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반겼었다.


나는 그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상상하며 마음대로 내가 만든 이야기속에

등장시켜 마을 전체를 기억 상실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지 내가 이 마을에서 최대한

행복할 것만 같았고, 그래야 정말 살다가 미련없이

떠나갈 수 있을 것 같았기때문이다.



낮에는 사람이 돌아다니고

밤에는 개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이 나라 섬 마을의 낮과 밤이

나와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때로는 무대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감상을 혼자 곰곰히

생각하다가 시계를 보니 한참이나 지나있기에


숙소에서 재빨리 짐을 풀고 산을 넘어

저 뒷동네 바다에 놀러가기로 한다.


그곳의 바다는 조금 더 푸르고 파랗단다.



사람들이 일러준대로 꽤 걸어가다보니

또 한번 신기루가 펼쳐진다.


아마,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연기처럼

증발했을수도 있는 꿈과 같은 아름다움일 것이다.

신기루처럼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노라고

믿는다면 더이상 애타거나 그립지도 않을 것 같은

일순간의 거짓 향수가 내 마음에 자리잡는다.



현실 감각이 어쩐지 돌아오지를 않는 나라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모든 감각에

마법에 걸어놓는 숨막히도록 덥고 뜨거운 나라.



내 꿈속에서 한시 바삐 증발해버려서

어딘가에 가둬두지 못한 여한으로 오래 오래

더욱 그리워하게 만들 그런 심산인 것 같았다.



철썩이는 파도에 맞춰 시선을

이리 저리 부벼대는 젊은 연인들을 지나

풀나무 가지를 메말려 주렁주렁 엮어

지붕을 올린 작은 매점 기둥아래

등을 지고 바다를 향해 가슴을 내밀고 앉았다.


철썩이는 파도가 가슴속으로 밀려올 때 1번,

그 파도가 가슴속까지 들어왔다가

거세게 쓸려나갈 때 2번.


한국에서 담아온 오물들을 마음 주머니에서

잔뜩 꺼내 바닷물에 털어낸다.


철썩이는 소리에 맞춰

다 가져가버리는 파도가 고마워 '저 멀리

한국 들를 일 있으면 거기서 보자.

내가 고마웠다고 세게 안아줄께'

마음속으로 진심이 가득찬 혼잣말을 건넨다.


그렇게 그늘아래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이리 저리 둘러보다 곁바다로 걸어 들어갔는데

잠깐 발이 안닿는 곳에서 팔다리를 휘저으려니

무언가가 팔에 '따끔', 또 '따끔' 한다.


뭐에 쏘였다는 생각보다는

어디 상처난 곳에 짠물이 들어가 따가운가보다싶어

다른 쪽 팔로 슬슬 만져보다가 둥둥 떠 있는데

따끔했던 부위 주변이 사정없이 붓고 쏘아대기 시작한다.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물에서 나와

근처 리조트 직원들에게 따갑다,

왜 이러느냐 이유가 뭐냐 했더니

글쎄, 젤리피쉬에 물린 것 같다며 갸웃.


해파리 같은 게 있다는 것이 이렇게

내 행복을 와장창 깨놓는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니


새삼 놀랍기도 했다가


다시 따끔거리는 감각에 놀라

이러다 내가 죽지 않겠느냐고 의무 요원들에게

물었더니 '알러지가 없으면 절대

그럴 일 없고 약한 거라 좀 있으면 가라앉으니까

그늘 아래서 잠시 쉬면서 있다가 정 아프면 병원을 가봐라'고 다정하게 답해준다.


이곳에서는 레몬을 발라 진정시킨다는

민간요법까지 친절하게 일러주며.



그 얘기를 들으니

금방 안심이 되어 한참 그늘 아래서

앉아있으려니 웃음이 피식 피식 나온다.



해파리가 먼곳에서 도망쳐온

내 팔에 앉았다 간 그 따끔한 순간부터

나는 정말 이 나라에 있구나 실감했다고

스스로 깨닫게 된것이다.



낯선곳에서 큰일이 날수도있겠다는 두려움에

열심히 헤엄쳐 나왔던 것,

영어가 통하지 않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을 설명하려 열심히 바디랭귀지를

했던 순간이 모두 삶에 대한 발버둥이었구나

싶었던 자각의 순간을 방금 지났던 것이다.


해파리 그까짓것에 살짝 쏘였다고

환상에서 깨어나 한국까지의 거리감을

체감한다니 참으로 삶에 대한 나의 집착이란

엄청난 크기구나 싶은 감상이 그제야 들어

마구 마구 웃음이 나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비행기를 타고오면서 기체가 잠깐 흔들렸던 것이나

섬까지 들어오는 동안 육지에 닿기까지

지독하게 먼 거리를 튀어가는 배 위의 내 모습이

어쩐지 참 지루하게 느껴졌던 때도 깰 수 없었던

나의 이국에 대한 무한의 환상


고작 해파리의 촉수 하나가 내 팔에 감기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바스라트려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 참 간단해서 폭소가 나왔다.



이따금 환상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해

현생의 삶마저도 꿈이 아닌가싶었던 최근의

내 모습에 무언가 경각의 주사를 놓는 것 같은

심플하고도 연약한 처방의 감각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나라에서 그다지도 쉬운 처방으로

삶에 대한 내 스스로의 애착을 확인할 수 있다니

더욱 좋아지는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다.



더위를 피해서 더 더운 곳으로 갔더니

역시 이열치열로 삶에 대한 권태기를 극복하게

되었던 기가 막힌 여행이 되었다.



권태로웠던 일상에서 도망치고자 떠났던

동남아의 어느 나라, 그곳 주민들이 즐겨찾는

동네 뒷바다에 살고 있는 해파리의

따끔한 촉수가 되찾아준 나의 생명력은

마치 심장 제세동기의 전기 충격만큼

어마어마하게 값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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