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우리는 사무실을 나와 간단한 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그녀는내내 나를 챙기기에 바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냥 자기가 하는 대로 그냥 있으랬다. 술은 하지 않았다.
"언니에게 늦는다고 얘기했어요?"
"아까 사무실에서 전화 했어"
"...."
지영이는 아내를 언니라고 했다. 내가 전화를 했다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잠시 답을 하지 않았다. 미묘한 감정이 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영이가 가지는 내 아내에 대한 생각은 어떤 걸까? 미안함? 아니면 질투? 아니면 연민일까?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식사를 마치고 차로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내가 손을 기어변속기 위에 놓으니 그녀가 내 손위에 자기의 손을 얹어 포개고는 살짝 쥐었다. 나는 그냥 앞만 보고 있었다. 그녀도 손만 포갠 채 앞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런 모습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차를 타고는 말이 없었다. 지영이는 그저 내 손등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기도 하고 내 손가락을 따라 아래 위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가끔 힘을 주어 꼭 쥐어 보기도 햇다. 그녀의 마음이 손등과 손가락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녀도 얘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차가 그녀의 빌라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가 멈추자 그녀는 내 볼에 입술을 갖다 댄 후에 “갈게요. 조심히 가세요.”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엘리베이터 버턴을 누르고는 다시 내게로 왔다. 창문을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창문을 내렸다. 그녀가 몸을 숙이고 얼굴을 옆으로 기울려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뭘 하려는지 알았기에 내가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갈게요. 조심히 가세요.”
좀 전에 차에서 내리면서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살짝 흔들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갔다. 땡~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환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끝까지 닫힐 때까지 우리는 아쉬운 눈빛을 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눈빛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빌라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에 있는 숫자가 4가 될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차를 돌려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조금 나와서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그녀의 빌라를 올려 보았다. 거기에는 그녀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어서가세요하는 손짓을 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차에 올랐다. 그녀가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 갖다 대는 걸 보았다. 카톡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호를 기다리고 섰을 때 열어 보았다.
‘조심히 가세요. 쌤. 쌤은 그냥 그대로 계시면 되요. 내가 다가갈게요.’
나는 답을 하지 않고 그 톡을 지웠다. 아내가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를 속인다기 보다는 그냥 그녀가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늘 내가 자기 손바닥 위에 있다고 얘길 한다. 아마도 이 일도 쉽게 들킬 것이다.
아내가 유일하게 내 여사친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 제법 큰 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있는 친구다. 몇 해 전 작은 아버지와 숙모님 일로 많은 도움을 준 친구다. 병원에서 몇 번을 마주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그녀와의 통화나 내가 그녀를 만나러 간다고 할 때도 그녀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왔을 때도 정말 아주 쿨하게 아무런 반감을 갖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왜 이리 늦었어요? 어휴 술 냄새.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에요?” 정도가 전부였다. 어쩌면 나를 믿는 게 아니라 그녀를 믿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들의 촉은 강하다. 아내는 그녀와 나 사이의 기류를 이미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내 첫사랑의 동생이다. 그녀의 언니는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연상이었다. 그녀는 내 첫사랑의 둘째 여동생이었다. 헤어지지 않았다면 내 둘째 처제가 될 여자인 것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나와 대학 학번은 같았다. 내가 대학을 늦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녀의 바로 위 언니가 나랑 동갑이었다. 막내가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게 차이가 났던 걸로 기억을 한다. 이제는 남남이 되어 버린 그들이다. 다만 간호부장으로 있는 이 친구만 나에게 가끔씩 연락을 했었다. 나의 첫사랑인 그녀의 큰언니가 50이 넘어 결혼을 했었는데 그 소식도 이 친구가 내게 전해 줬다. 그녀에게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정말 머리에 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세상이 하얗게 되는 걸 느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어쨌건 아내는 이 친구만 유일하게 나의 여사친으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