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사추이 페리 터미널을 빠져나오면, 탁 트인 빅토리아 하버 옆에 서 있는 시계탑이 보인다. 어릴 때부터 이 시계탑 앞을 지날 때면, 아버지께서 오래전 이곳에 기차역이 있었고, 이 시계탑은 기관사들이 열차 출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세워진 시계탑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아버지 말씀처럼 기관사가 이 시계탑을 보고 열차를 출발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곳에 기차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기차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시계탑만 지금까지 계속 남아 홍콩 역사 기념물로 보존돼 과거 홍콩 증기 시대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홍콩 대표 랜드마크인 침사추이 시계탑은 44미터 높이의 시계탑은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꼭대기에는 7미터의 피뢰침이 있다. 보통 침사추이 시계탑이라고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Former Kowloon-Canton Railway Clock Tower(前九廣鐵路鐘樓)로,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에 열차가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캔톤은 중국 광동성 광저우의 옛 이름으로, 1906년 영국과 중국은 홍콩과 광저우를 잇는 열차 건설을 결정했다. 기차는 1910년부터 운행되었지만, 정작 기차역 위치는 하버 간척 사업이 끝난 후인 1912년에서야 결정되면서 비로소 기차역을 짓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로, 기차역 건설이 지연됐지만, 1915년에 시계탑을 포함한 기차역 외관공사가 끝났고, 1916년에 내부공사까지 마쳐 기차역으로써 온전히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기차역은 완공됐지만 시계탑은 미완성 상태였다. 시계탑의 시계와 종은 영국에서 제조돼 1921년이 되어서야 설치됐다. 그전까지는 시계탑 한 면에만 철거된 Pedder Street 시계탑의 시계를 재사용해 설치했을 뿐, 나머지 3면은 시계가 도착할 때까지 기차역이 완공되고도 6년간 비어있었다. 이런 연유로 과거 기차역 사진을 보면 시계가 없는 시계탑의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시계탑의 시계침은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이 홍콩을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전쟁통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것을 증명하듯 시계탑 벽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까지도 전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2021년 12월 9일, 시계탑 종 100주년을 맞이해 오후 6시에 종소리 행사를 했었다. 이때 생각해보니 시계탑 종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언제부터 울리지 않았는지 궁금했었다. 침사추이 시계탑 종소리는 1921년 처음 소리가 울린 이후 1950년부터 더 이상 울리지 않고 있다. 시계에 모터를 설치하면서 종소리가 더 이상 시계에 맞춰 정확하게 울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탑 꼭대기의 종은 떼어져 현재는 시계탑 내부에 보존돼 있다. 현재 시계탑 내부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지 않았지만, 창문을 통해 안에 전시된 종을 볼 수 있다.
침사추이에 있던 기차역은 1975년 홍함으로 이전되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운행되었다. 이용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차역은 많은 시민과 문화유산보존 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977년에 철거됐다. 그러나 기차역 일부였던 시계탑만이 지금까지 보존돼 과거 기차역의 흔적을 지키고 있다. 침사추이 옛 기차역은 많은 기성세대에게 설레는 만남과 슬픔의 이별이 반복된 추억의 공간이다.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이 이 기차역을 통해 홍콩에 도착해 홍콩 항구를 통해 세계 전역으로 이민을 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또 수많은 홍콩인이 가족들을 만나러, 중국에 여행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기차에 올랐다. 홍콩과 중국을 오가던 사람들로 붐볐던 기차역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문화센터가 들어섰고, 주변에 우주박물관,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만남과 이별의 공간은 홍콩의 대표 문화 지구로 자리 잡아 홍콩 시민과 관광객들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