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된 요즘, 수취인 정보를 적을 때 항상 수취인의 이름, 연락처, 주소와 우편번호를 적는다.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으레 홍콩에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하나가 없다. 바로 우편번호다. 그렇다, 홍콩에는 우편번호가 없다.
처음 홍콩에 온 사람들은 홍콩에 우편번호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우편번호라하면, 우편물 분류와 배달을 편리하게, 그리고 신속 정확하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않는가. 그런데 홍콩에서는 우편번호가 없기 때문에 우편번호란에 보통 빈칸으로 두거나 N/A를 적어도 되고, 반드시 번호를 기입해야 한다면 000, 000000, HKG라고 기입하면 된다. 우편번호도 없이 우편물과 소포가 어떻게 제대로 도착할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놀랍지만 생각보다 너무 잘 도착한다.
아니 홍콩보다 토지 면적도 작고 인구도 적은 싱가포르에도 우편번호가 있는데, 홍콩에는 우편번호가 없다니 신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우편번호가 없는 도시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이웃도시 마카오를 포함해 바하마, 자메이카, 피지, 예멘 등에도 우편번호가 없는데, 대부분 면적이 좁거나 혹은 너무 넓은데 배송 인프라가 열악한 도시나 나라들이 우편번호 시스템이 부재하다.
재밌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또는 홍콩 현지 내에는 우편번호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 중국에서 홍콩으로 우편이나 소포를 보낼 때는 홍콩 고유의 우편번호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보내는 우편물에는 우편번호 99077을 적는다. 마찬가지로 우편번호가 없는 마카오로 보낼 때는 우편번호 999078을 사용한다. 하지만 정작 홍콩이나 마카오에 사는 사람들은 이 우편번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홍콩도 2000년에 우편번호 시스템 도입을 고려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도입되지 않았다. 홍콩 우정국(중앙우체국)에 따르면, 수기든 인쇄든, 영문이든 중문이든, 우편번호 없이 주소만으로도 90% 이상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어 배송률이 높다. 또한 홍콩처럼 면적이 좁고 빌딩과 도로가 촘촘하게 설계돼 건물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각 주거 및 상업 건물에 우편번호를 부여하게 되면 우편번호가 15 자릿수까지 늘어날 수 있어, 오히려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이 우정국의 주장이다.
사실 뒤늦게 우편번호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비용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2015년에 아일랜드가 많은 반대 속에서도 3800만 유로의 거금을 들여 우편번호 시스템인 Ericode을 도입했는데, 아직까지도 부실 계획, 과도한 비용 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Less is More.’라는 말이 있듯이 더한다고 해서 항상 더 효율적이거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과연 홍콩에 우편번호가 생긴다고 하여,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우편물을 배송할 수 있을까? 설령 조금 더 빨라진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과 혼선을 감수할만한 가치인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도 내 우편번호 없는 내 우편물이 잘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