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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r 01. 2023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냐?

연민(憐憫),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

지난 2월 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10시 무렵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로 인해 실종자 포함 사상자가 350명이 넘었던 그 사고는 지금까지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1994년)와 남영호 침몰 사고(1970년), 세월호 참사(2014년)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사고였다.


일요일 이른 아침, 퇴근 후 아파트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우고는 버릇처럼 페이스북을 열었다. 언제부턴가 제목으로 낚시를 하고 클릭수를 통한 장사를 하는 포털의 뉴스를 보지 않게 된 나는 믿을 만한 페이스북 친구들이 전해주는 소식으로 뉴스를 접하는 편인데 그날 아침 눈에 띈 것이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식에 관한 것이었다. 


벌써 20년이라니,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간 것이 놀라웠고 어릴 적 내가 자주 다니던 익숙한 곳에서 벌어진 사고라 더더욱 생생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나의 무신경함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201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추모식이 열렸고 사고 이후 그 기간 동안 매년 계속되는 인근 상인들의 반대로 위령탑 참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전형적인 님비(NIMBY) 현상이었다. 9.11 테러 이후 참사가 일어났던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 추모 공원을 조성한 미국처럼 사고 현장에 위령탑이나 추모비를 세우는 것조차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시외곽이라 할 수 있는 팔공산 자락으로 쫓겨나듯 만들어진 곳이 시민안전 테마파크였다. 그마저도 주변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테마파크 내에 있는 희생자들의 묘역은 이름조차 없고 위령탑은 지금까지 정식 명칭이 정해지지 않은 채 '안전조형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님비(NIMBY) 현상 : 내 뒷마당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영어 표현 'Not In My Backyard'의 약자로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 등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동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사고가 일어났던 그 자리에는 지방민인 나조차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막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참사 위령탑은 사고 현장과는 동떨어진 양재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언젠가 한 번 관련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지도상으로는 분명 대로변에 위치해 있고 지하철 역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또한 님비 현상의 하나였다.


올해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에서도 상인들의 반대 집회가 있었다고 한다. 양측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미리 배치되어 다행히 충돌은 없었지만 추모식 내내 바로 앞에서 트로트 음악을 틀어 놓은 일부 상인들의 방해로 추모식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며칠에 걸쳐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하겠다는 것도 아닌 단 몇 시간짜리 행사를 하는 것일 뿐인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과연 이들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이 단식 투쟁하는 곳 앞에서 보란 듯이 폭식 투쟁을 하고 얼마 전 있었던 이태원 참사 때도 놀다가 죽은 애들을 왜 추모해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인지, 그런 사람들이 버젓이 내 주변에서 멀쩡한 척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연민이라는 감정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성적인 사고(思考)를 하고 때로는 양보와 희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사고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게 나만 아니면 되고 불행의 당사자가 나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식의 1차원적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해서는 안될 생각을 가끔 한다.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 직접 당해봤으면 좋겠다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한문철 변호사가 얼마 전 그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무사한 것이 안전운전을 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운이 좋으셨던 겁니다."

나는 모든 사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금까지 내가 무사히 잘 살고 있다고 해서 안전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운이 좋아서 큰 사고를 당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라고 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서서 장사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팔공산 동화지구의 일부 상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참사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100% 확신하십니까? 당신들도 언제 어느 시에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분들이 아래에 이어지는 짧은 글을 보고 부디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사고 8분 후인 오전 10시 1분 故김인옥 씨(당시 나이 30세)가 마지막으로 한 남편과의 통화

"엄마 나간 거죠? 난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마요. 사랑해."
사고 열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탈출에 성공한 어머니에게 故손준호 씨(당시 나이 25세)가 보낸 문자 메시지

한겨레 강민진 기자 [역사 속 오늘] 기사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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