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왜 나쁜 짓을 하고 그래?
새벽 2시 30분쯤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다급하게 뛰어온 경찰 한 분이 인근 편의점을 돌며 절도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중인데 혹시 피해상황은 없는지 여부를 물어보며 범인의 인상착의를 말해주었다. 아직까지 그런 손님은 온 적이 없다는 내 말에 조심할 것을 거듭 당부하며 현재 인근에서 경찰들이 순찰 중이니 혹시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 오면 지체하지 말고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분쯤 지났을 무렵 문제의 그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순간 이성을 넘어서는 본능이 발동했다. 살짝 소름이 돋고 털이 곤두서는 느낌, 다년간 일하면서 축적된 데이터 베이스를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경찰이 말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임을 직감했다. 경찰이 말해준 다른 점포의 범행수법에 따르자면 진열되지 않은 상품을 요청한 후 근무자가 그걸 꺼내오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카운터에서 현금을 털어갔다고 했었다. 10분 남짓한 그 짧은 시간에 카운터 주변을 정리하고 커다란 물류박스를 이용해 카운터로 들어오는 입구 쪽을 최대한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터였다.
그 남자는 들어오면서부터 유독 여기저기를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횟수가 많았다. 아마도 비슷한 수법을 써서 돈을 들고 도주할 동선을 계산했다가 이내 무리라는 판단을 하고 포기한 것인지 뜬금없이 컵라면 진열대 쪽으로 향했다. 최대한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 가며 다시 한번 인상착의를 살피는데 계산을 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꺼내는 미처 정리되지 않은 현금뭉치를 보고 그가 절도범임을 확신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게 내 손에 달렸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애써 태연한 척하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너 이 새끼! 잘 걸렸다.'를 외치며 단숨에 범인을 제압하고는 여유 있게 경찰에게 인계하는 아름다운 장면은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몸싸움이 시작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하고 자칫 잘못하면 쌍방폭행이냐 정당방위냐의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몸은 다치고 범인은 놓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삼각김밥을 데워서 가져다주는 척하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괜히 한 번씩 꺼냈다가 넣었다가를 반복하며 라면에 물을 붓고 앉기를 기다렸다. 라면을 먹기 시작하면 최소 3~5분은 걸리니 그 시간 동안 신고를 하고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 행여 도주를 한다 해도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잡힐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자리에 앉아 삼각김밥을 한 번 베어 먹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물건 정리하는 척하던 것을 멈추고 백 룸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문자 메시지를 이용해 신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좀 전에 찾아왔던 경찰이 다시 들어왔다. 그 사이 동료 경찰로부터 범인의 사진을 전송받아서 보여주기 위해 다시 온 것 같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서 있는 내 쪽으로 걸어오던 경찰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 남자 쪽으로 걸어가서는 재빨리 폰을 빼앗으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기 시작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범인도 나도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한 손으로는 범인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지원 요청을 하는 경찰을 보며 혹시나 범인이 경찰을 뿌리치고 도주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뒤쪽 출입구 쪽을 막아서며 지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을 알았지만 무전을 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1명의 경찰이 들어왔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4명의 경찰이 추가로 들어왔다.
처음, 한 명의 경찰이 왔을 때 입었던 옷까지 벗어던지며 고압적인 자세로 반항하던 범인은 3명의 건장한 경찰에 둘러싸여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가까스로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고 일단락될 무렵 강력계 형사로 추정되는 남자들이 무리 지어 들어왔다. 점포 내에 피해를 입은 것은 없는지 묻고 그간의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몇 대의 순찰차들이 줄을 지어 떠나고 마지막으로 형사들이 탄 승합차가 가게 앞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긴장이 풀린 탓인지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리는 느낌과 함께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텀블러에 커피를 한 잔 따르고 한 모금 마실 즈음 맨 처음 범인과 맞닥뜨리고 직접 체포한 경찰이 다시 찾아와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두 떠나고 하던 일들을 마무리한 후 청소를 하기 위해 시식대 쪽으로 갔더니 범인이 한 젓가락도 입에 대지도 못하고 그대로 남겨둔 라면이 퉁퉁 불어 있었다. 그릇을 비우고 치우는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닌 다른 근무자가 있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경찰이 미리 알려줘서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신고하려고 마음먹었던 그 찰나의 순간에 경찰이 다시 오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증거물을 찾기 위해 경찰들이 한참 몸수색을 하는 동안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칼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어쩔 뻔했을까를 생각하니 심장이 요동치듯 뛰었다. 출동한 경찰도, 나도 다치지 않아 무엇보다 다행이었고 빠른 시간 내에 범인을 검거하고 해결이 된 것 또한 다행이었다.
23년째 이 일을 하며 경찰에 반항하다가 수갑을 차고 강제연행되는 모습을 두 번째로 보았다. 경찰이 고지하는 미란다 원칙을 라이브로 들은 것도 두 번째였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랄 같은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경찰서 불려 가서 조서도 써보고 높으신 검사님으로부터 무혐의 처분 편지(?)도 받아보고 정말 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하게 된다. 착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그게 그리 힘든 것인지 만약 은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나는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그나저나 먹지도 않은 라면 버렸다고 찾아와서 행패 부리는 것은 아닌지 그게 걱정이다. 경찰 앞에서 웃통 깠을 때 보니 온몸에 살찐 용이 몇 마리 날고 있던데. 제발 오더라도 내 시간에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맞아도 내가 맞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지.
<덧붙이는 글>
불과 4시간 전 있었던 일을 급히 쓰느라 글이 매끄럽지 못할 겁니다.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