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Jul 05. 2022

참을 인(忍) 하나를 지웠던 날

개과천선이란 존재하는가

지난 2월,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년심판>이란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였기에 애써 외면하다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예고편에서 주인공인 심은석 판사(김혜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판결을 내리는 한 장면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 속에 쉬지 않고 전편을 봤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런 통쾌함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나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극 중 촉법소년으로 나오는 연기자들의 연기와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보는 순간 어느덧 시계는 10년 전 그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늦여름 새벽이었다. 웬만한 업무들이 다 끝나고 손님이 뜸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새벽 서너 시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이 되어봤자 14살 정도 되는 다섯 명의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 시간대에 다닐 만한 나이도 아니고 예사롭지 않은 말투와 옷차림새를 보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작은 컵라면 두 개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소음공해에 가까운 욕설이 난무하고 만취한 취객들처럼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댔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들어도 못 들은 척 최대한 외면을 했다. 그렇게 두 시간쯤 흘렀을까. 테이블 정리도 하고 아침 손님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하기 위해 아이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바닥 여기저기 뱉은 침과 각종 쓰레기들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청소를 해야 하니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냈다.

"우리 아직 덜 먹었는데요. 여기 보세요. 아직 남았잖아요."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당돌함을 넘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젓가락을 놓은 지 1시간은 족히 넘은 시간이었고 CCTV를 통해 모든 걸 확인한 후 말했음에도 이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혹시나 잘못 봤나 싶어 확인차 들여다본 컵라면 용기에는 티스푼으로 떠도 채 한 스푼이 안될 정도의 국물이 침과 가래와 뒤섞인 채 있었다. 말문이 막혀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대장 아이는 보란 듯이 젓가락 끝으로 국물을 찍어서 혓바닥 끝에 갖다 대며 먹는 시늉을 하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일어나 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온 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었다.

"씨X, 라면 좀 먹겠다는데 옆에서 존X 시끄럽게 하네."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인지 그때부터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에 기대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리는 아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괜히 물건을 집었다가 바닥에 던졌다가 발로 차는 아이, 아예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도 있었다. 그중 한 아이는 자신을 기분 나쁘게 했다고 112 신고를 하기도 했다.


얼마 후 경찰이 도착하고도 아이들의 난동은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출동한 경찰의 이름표를 만지작거리며 머리로 가슴을 들이받기도 했고 불친절한 사장을 잡아가든지 그게 아니면 자신들에게 수갑을 채우라며 악을 쓰기도 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연세 지긋하신 경찰관 한 분이 나를 따로 불러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보시다시피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네요. 억울하시겠지만 사장님이 한 번만 양보하셔야겠습니다."


잘못한 게 있어야 사과할 게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촉법소년인 것을 악용해 경찰마저도 우습게 보는 아이들 아닌가. 그들에게 상식을 요구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경찰이 권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 후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장면이 떠올랐지만 가까스로 그 생각을 지우며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사과하는 내내 어머니와 아내, 딸의 얼굴이 차례차례 스쳐 지나가는데 그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끝이 나고 경찰관 두 분이 내게 잘 참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애들이 저러냐는 푸념과 함께 가게를 나가는 연세 드신 경찰관의 뒷모습이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한 차례 소동이 끝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햇살 눈부신 아침이 찾아왔지만 3시간 가까이 맘고생을 했던 기억 때문인지 내 마음은 바닥에 가라앉은 채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모멸감, 자괴감을 넘어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은 생각에까지 미치니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인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최근 들어 촉법소년에 대한 기준 연령을 낮추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호통 판사', '천 10호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 대신 단순히 촉법소년에 대한 연령을 낮추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 또한 연령만 낮추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생각한다. 어차피 그렇게 해봤자 그동안 통계에 잡히지 않던 그 연령대의 수많은 범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 뻔하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에는 교화를 통해 아이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온정주의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양쪽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라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곤란하다.



우리 가게에서 절도를 하고 경찰에 검거된 아이가 몇 달 후 가져온 장문의 편지 마지막 부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개과천선이란 불가능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빈대의 피해가 극심하다면 초가삼간 아니라 마을 전체를 불태워서라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며칠 전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내 생각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저 아이는 처벌이 무서워 마음에 없는 편지를 쓴 것일까? 아니면 한순간의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보낸 한 통의 편지는 여전히 10년 전의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