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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un 25. 2023

그리움만 두고 가네

인사 없이 떠나시던 날

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月明)

生死路隱                      生死의 길은  
此隱有河米次朕伊有   예 있음에 두려워하고,    
吾隱去內如辭叱都       나는 간다는 말도 
如云遺去內尼古           못다 이르고 갔는가

<후략>         

고등학교 다닐 적 고전문학 시간에 배웠던 월명사의 <제망매가>라는 향가가 문득 떠오른 것은 어느 금요일 밤 내게 전해진 카톡 때문이었다.


故 OO옥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드립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셨던 분의 부고 소식이라니 한참 잠에 취해 있을 시간대였지만 그 짧은 문장을 본 순간 다시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를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질 만큼 슬픈 것도 아니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도 아닌 이상한 감정,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함께 알고 지내던 누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분 또한 내가 느낀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무하고 황망하고 당황스럽고 그저 한숨만 계속 나오는...


돌아가신 옥이 누님은 10여 년 전 내가 지인 몇몇과 기타 카페를 만들면서 알게 된 인연이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일반화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영상이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업로드되던 시절, 개인 블로그를 통해 그녀가 부른 노래 한 곡을 듣고 빠져 들게 된 나는 삼고초려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장문의 쪽지를 남겼었고 그분이 카페 가입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거의 2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글과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며 쌓은 정은 비록 온라인 인연이긴 해도 웬만한 오프 라인 인연 못지않게 끈끈했을 정도였기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제 한 번 날 잡아 얼굴이라도 봐야 되지 않겠냐는 묵시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그게 정확히 2013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딸아이의 유치원 방학과 더불어 며칠의 시간여유가 생긴 우리 가족은 몇 시간이나 걸리는 열차에 몸을 실었고 그 누님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반차 휴무를 신청해서 우리가 도착할 역까지 마중을 나왔었다. 경기도 의왕과 경남 창원, 거의 남북의 끝자락에 위치한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무모했던 그날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짧은 만남의 시간을 뒤로하고 헤어지며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카페 사람들 모아 1박 2일 가족 모임이라도 추진하자는 약속은 점점 시들해지던 기타의 인기와 더불어 왕성한 활동을 하던 회원들이 하나둘 떠나며 흐지부지해졌다.


그렇게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며 해가 거듭되는 중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우리는 가끔 올라오는 SNS 새 소식을 통해 가뭄에 콩 나듯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최근 3년 정도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 공간에 내가 글을 쓰고 있노라 말이라도 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그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댓글이라도 꾸준하게 달아줬더라면 하는 후회도 든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분이 남겨주신 흔적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 통틀어 유일하게 내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던 기억도, 목소리에 뽕필이 너무 강하다는 나의 댓글에 천성이 착해서 그렇지 한 치만 어긋났어도 키보드 워리어가 되고도 남았을 거라며 나를 놀리던 그 기억도 이제는 모두 내 마음속 추억의 공간에만 남게 되었다.




그래도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이렇게 노래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카페활동을 끝내기 얼마 전 그분께서 불러주셨던 그 노래가 오늘따라 유달리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비치의 <모르시나요>라는 곡의 마지막 줄 가사가 이 새벽 내 마음을 더더욱 무겁게 만든다. 하필 노래를 불러도 왜 그 노래를 부르셨는지...


인사 없이 떠나시던 날 그리움만 두고 가네




옥이 누나, 오래전 약속드렸던 권진경의 <강변연가> 기타 반주 파일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언젠가 먼 훗날 제가 그곳으로 가면 그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그때 우리 멋지게 듀엣 한번 해요. 물론 가창력에서는 제가 현저히 딸리긴 하지만 제가 또 감정과 기교 하나는 끝내주지 않습니까?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길 바랄게요. 잘 지내요.




<근황 알림>

몇몇 분께서 제게 안부를 전해주셨는데 제대로 답을 못 드렸습니다.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던 일이 갑자기 많아지기도 했고 더 이상 글을 써서 뭐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주변에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생기니 산다는 것이 너무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언제라고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랬듯 훌훌 털고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만 다시 돌아오는 날, 여러분들 글은 차근차근 다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글은 잠깐 짬을 내서 쓰는 글이라 내용이 엉망일 듯싶습니다. 역시 글도 꾸준하게 써나가야 함을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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