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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글 Jul 14. 2024

미워한다는 것.

너와 헤어지고 나는 너무 힘든 나날을 보냈어. 내 방 곳곳에는 네가 준 선물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즐비했고 나는 도저히 그것들을 버릴 자신이 없었어. 정말이지 남겨진 것들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를 영영 잃는 것 같았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그 흔한 이별과 다를 줄 알았어.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거든. 그래서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우리의 흔적들을 모조리 상자에 넣고서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두었어. 언젠가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까지 그냥 그때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정신없이 석 달쯤 지났나. 우연히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어. 너랑 그 사람이 연애를 시작한다며 같이 찍은 사진을 봤어. 잘 어울리더라. 그때부터 우리가 정말 남이 되었다는 게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어.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주겠다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 외로웠던 날이었어. 그 하루가 끝날 무렵에 나는 우리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자를 열어 봤어. 그래, 우리도 참 잘 어울렸었는데. 마음이 찢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전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을 줄 알았는데 이별은 미루어도 이별이더라. 게다가 하필이면 예쁘게도 사랑을 해서 더더욱 아파.


이미 우리는 갈라졌고 다시 하나가 되기에는 제법 늦었다는 걸 알아. 있잖아, 그래도 나는 너에게 있어서 쉽게 잊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어. 그렇게 너의 추억 모퉁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남겨지고 싶었어. 그런데 요즘 너를 보고 있으면 꼭 내가 너의 시간에 잠시라도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만 같아. 그냥 이 세상에서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너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만 같아.


가까이에 있어도 멀리 있고 멀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너는 끝끝내 사라지게 되더라도 내가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운만큼은 두고 가기를.


책 <나는 너의 불안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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