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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5. 2020

피렌체의 오래된 다리

방구석 드로잉 여행  10

 ‘오래된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가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강의 이쪽과 저쪽에 살던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작은 나무다리로 시작되었다가 좀 더 튼튼한 다리로 변하게 되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다리는 세월이 바뀌고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바뀌어도 강물에 다리를 담근 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동안 다리의 양쪽에는 푸줏간들이 들어서 있었다. 털을 뽑고, 내장을 들어내고 불필요한 부위는 그냥 강으로 던져버렸겠지. 아주 오래전이니까 그래도 괜찮을 때였다. 별로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겠지만 세상에 이런 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채식을 하시는 분들은 제외) 하지만 유별나게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부자이면서 도시의 권력자였다. 강 건너편의 저택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출근을 하려면 이 다리를 지나야 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 푸줏간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었는지 다리위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그 위로 지나다니다가 아예 푸줏간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그 곳에 보석 등 고가의 사치품을 취급하는 상점으로 변모시켰다. 지금도 ‘오래된 다리’를 지나가면 보석상들이 부유해 보이는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다리가 서있는 강의 이름은 ‘아르노’이고 ‘오래된 다리’를 이태리사람들은 ‘폰테 베키오’라고 부른다.    



  베키오 다리가 사라질 뻔한 일도 있었다. 2차대전 중에 연합군에 쫓겨 퇴각하던 독일군 사령부는 아르노강의 모든 다리를 파괴하여 연합군의 진격을 방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충실한 독일인들이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그렇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명령을 받은 독일장교는 베키오 다리를 폭파하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다. 너무 아름답고 ‘오래된 다리’지 않은가? 그래서 깔끔하게 명령을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이 상큼한 생각을 가진 독일군 장교는 나중에 어찌 되었을까?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가만히 상상을 해본다. 이런 생각을 한 독일군 장교는 주둔하고 있는 동안 친절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이미 피렌체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거짓 보고서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 보내고 이를 고마워하는 피렌체 친구들과 와인을 한잔 하면서 마지막 만찬을 즐긴다. 쓸쓸하게 휘파람을 불며 숙소를 돌아가는 길에 평소에 그를 흠모하고 있던 그레타로부터 수줍은 고백을 받고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전쟁 중이었고 내일을 알 수 없는 젊은 남녀는 그날 밤 평생을 나누어 해야 할 사랑을 서로에게 모두 쏟아 붇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수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독일군 장교는 피렌체로 다시 돌아온다. 수소문을 해서 그레타를 찾지만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슬픔을 감춘 채 발길을 돌린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슬프도록 찬란하다.   

  많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살아남은 다리는 지금도 꾸준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다리의 빈 공간에는 자물쇠 뭉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와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던지고 가는 걸까? 사랑이 그렇게 쉽게 가두어 질 수 있는 거라면 그 흔한 사랑과 이별 노래가 나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걸 알면서도 오늘도 연인들은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던지고 간다. 연인들을 보고 있자니 옛날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


  서울 남산에도 자물쇠를 채우는 곳이 있다. 연인들만 채우는 것은 아니고 소망하는 일, 약속하는 일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작은 자물쇠의 탑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물쇠를 채운다고 그 모든 사랑과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 연인과 함께 자물쇠를 채우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소망하고 있다. 나에게도 자물쇠를 채웠던 기억이 있었던가. 딸아이와 함께 소망을 적은 쪽지를 넣고 자물쇠를 채웠었다. 아이에게는 건강하게 자라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빌어 주었고 아이는 엄마아빠 사랑한다고 적어두었던 것 같다. 자그마한 일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겐 의미가 있는 추억이었고 아이가 평생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물쇠 값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   

  사람들이 와서 자물쇠를 매달거나 말거나, 베키오 다리는 오늘도 화사한 자태를 뽐내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바로 피렌체의 안주인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베키오 다리를 뒤에 두고 오른쪽을 보면 사무실처럼 생긴 건물이 있고 가운데 공간에는 피렌체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들의 조각상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빈치에서 온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도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마키아벨리도 보인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공무원 노릇을 열심히 하면서 책을 쓰기도 했으니, 르네상스 시대의 투잡러라고 할 수 있겠다. 아, 잘 찾아보면 단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유명한 ‘신곡’을 쓴 유명한 작가이지만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


  읽기가 불편하고 재미가 없어서 이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전의 의미가 모든 사람이 들어는 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문학작품을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이 책을 잘 알고 심지어 읽기까지 한다. 지적으로 우리보다 훌륭해서일까? 그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 이태리는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이다. 백오십년은 되었을까? 아니, 그럼 로마제국은? 로마제국과 이태리는 같은 땅에 있다 뿐이지 전혀 다른 나라이다.


  통일이 되면서 표준어가 필요해진 정부는 피렌체와 토스카나 지방의 언어를 표준어로 삼고 초등학생들에게 단테의 신곡을 읽히면서 표준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혹시 이태리 친구를 사귀게 되면 단테의 신곡을 한 구절 읊어달라고 해보시길. 우리가 ‘나랏말쌈이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어쩌구 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사무실처럼 보이는 이 건물의 이름은 ‘우피치’이다. 영어로는 ‘오피스’.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무원을 하던 마키아벨리도 아마 이 곳 어느 한 구석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을 거란 상상을 해본다. 훌륭하지 못한 상사를 만나 ‘개’고생을 하면서도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바쁜 와중에 책도 쓰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투잡러 샐러리맨, 마키아벨리에게 경의를······.

       


  우피치에서 보면 건물 사이로 멋진 탑이 보인다. 탑이 있는 건물은 오래된 궁전이다. 이태리말로는 팔라쪼 베키오. 아까 다리를 지나올 때 말한 바로 그 권력자가 근무하던 곳이다. 멋진 광장에 멋진 궁전을 집무실로 갖고 있던 권력자의 가문은 ‘메디치’이다. 처음에 광장이 시작되었을 때는 탑만 덩그러니 있었다.


  탑 주위에 지금 보이는 것처럼 육중한 형태의 건물을 완성되자 광장은 답답할 정도로 좁아졌고 이를 해결하고자 재개발을 통해 광장주변의 건물을 밀어버리고 지금의 광장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민초는 권력자에게 밀려 항상 주변부로 밀려나가게 되어있나 보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장의 이름은 ‘시뇨리아’이다.



  시뇨리아 광장의 주인공으로는 단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일 것이다. 주변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국가의 운명을 <다비드>에 투영해서였을까. <다비드>는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도 다양한 복제품이 광장과 기념품가게를 채우고 있다.


  광장 옆을 보면 오픈된 회랑이 있다. 멋진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공짜로 실컷 눈요기를 해보자. 회랑의 용도가 처음부터 전시공간은 아니었다. 당시에 팔라쪼 베키오 앞에서 벌어지는 근위병 교대식이 꽤 유명했었나 보다. 라벤나의 주교가 이걸 보려고 먼 길을 왔는데 하필 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구경하던 높으신 양반들은 홀딱 젖어버리고 권력자는 체면을 구겼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으니 불만을 표시하지는 못했겠지만 전천후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멋진 지붕을 가진 관중석을 만들게 되었다. 일회성 행사를 위하여 만들어 두었던 회랑은 나중에는 메디치 가문의 용병인 독일 창기병들의 대기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회랑의 이름도 Loggia dei Lanzi가 되었다. Lanzi는 ‘창’을 의미한다.


  란치에서 모두가 알만한 조각상으로는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가 있다. 감정이 배제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 전사의 무표정한 얼굴과 청동이라는 재료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나도 모르게 압도된다. 서둘러 고개를 돌리지만 살갗을 찌르는 햇살은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고 그늘은 세이렌의 노래 소리처럼 여행자를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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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진흥원 2022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되어 고대하던 출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그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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