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광기 혹은 예언으로 만들어진 소설
버스를 타고 양재역 가는 길. 멀미가 날 까봐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채 밖을 내다보고 있다. 강남역 사거리에 현수막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꼴보기 싫은 풍경중 하나이다. 내용이라도 읽어줄 만하면 봐주겠지만,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뿐이다. 유머감각도 없고 돈 들여서 현수막을 만들어 놓고 ‘쯧쯧, 저게 뭐냐 ‘ 소리만 듣는다.
누가 붙여 놓았나 보았더니 ‘신자유연대’인가 뭔가 그랬다. (기억은 언제나 가물가물.)
자유면 자유지 신자유는 또 무슨 말이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달려 나오더니 요즘 읽고 있는 1984까지 소환한다. 우리 집 홍여사가 동물농장을 빌리러 갔다가 헷갈려서 빌려온 책이다. 어떻게 동물농장하고 1984가 헷갈리나 하시겠지만, 두 책 모두 당시 전체주의 국가로 퇴화 중이던 ‘소비에트연방’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인 쓰기’의 결과물이었으므로 아주 동떨어지지는 않은 셈이다.(이해심이 참으로 많은 배우자가 아닐 수 없다)
전체주의의 삶이 어떨지 궁금하다면 이 소설 강추. 미국이 영국과 아메리카를 병합한 ‘오세아니아‘라는 가상국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빅브라더‘에 의해 모든 국민이 감시되고 역사는 조작되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이다. 역사왜곡을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방법론’이 아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역사조작에 관심이 많은 ‘교육부, 문체부, 국방부 기타 등등‘ 관계자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세대로서 어느 정도 ‘전체주의’를 경험해서 그런 걸까. 소설이라지만 어쩐지 현재진행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 중에 조지오웰의 유머(영국사람의 블랙유머)가 돋보이는 장면은 ‘신어사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이다. 작가 자신도 이 부분이 몹시 마음에 들었던지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신어의 원리’라는 별도의 챕터를 만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신어를 만들어 낸 목적은 명확하다.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어휘선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정치적, 지적 자유와 같은 개념의 단어들은 삭제되고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인데, 이 그릇을 작게 혹은 아예 없애버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발하고 근사한 아이디어인가. 사실 ‘생각’이 많은 인간들은 언제나 국민을 위하는 ’척‘하는 위정자들에게는 ’등에‘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신어의 예를 들어보자. 아주 재미있다.
‘Good’이란 단어의 반대는 신어에서는 ‘Ungood’이다. 당연히 반대의미를 가진 ‘Bad’는 신어사전에서는 삭제된다. 엑셀런트, 스플렌디드와 같이 ’굿‘보다 좋은 경우에 쓸 때 사용되던 단어들은 ‘플러스굿‘ ’더블플러스굿‘을 사용하는 것으로 ’퉁‘쳤다. (고3수험생에게는 정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회가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현수막이야기. 내용을 떠나서 현수막을 내 건 단체의 이름이 ‘신자유연대’라고 했다. 원래 ‘자유’란 단어에는 다른 접두어가 불필요하다. ‘민주주의‘란 단어에도 다른 접두어가 불필요하듯이. 접두어를 쓰는 순간 원래의 의미는 다른 무엇인가(대개는 불순한 의미)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유신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 스탈린의 ‘사회민주주의’ 이거 모두 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이데올로기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 ‘자유민주주의(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어이지만 누가 사용했느냐에 따라 의심을 해보게 된다) 이런 단어들을 보게 되면,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 ‘뉴라이트’를 그냥 ‘새로운 보수‘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없을 테지. 역사를 왜곡하고 친일을 넘어 ‘숭일’을 일삼는 자들에게 과연 ‘보수’라는 말을 써 줄 수가 있을까. 나같은 진짜 ’보수‘는 어떻하라구.
조지오웰은 이미 이런 오용되는 단어들의 등장을 그의 책에서 예언했다. 1984에 나오는 ‘애정부’의 주요 업무는 고문, 협박, 납치, 살인, 처형 등이다. ‘진리부’는 역사조작이 주요 업무이다. ‘기억통’은 보존되어야 할 ’기록‘을 삭제하는 장치이다. ’ 절대선‘이어야 할 단어들이 이렇게 사용되다니 어이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국가에서는 당연히 ’자유‘가 보장된다. 굳이 그 앞에 ’자유‘를 붙여 ’자유민주주의‘란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정말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부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와 행동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청문회 도중에 줄행랑을 쳐버리는 장관후보자, 표현의 자유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장관후보자. 이런 자들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자유’, 법에 따라 그 직에서 물러난 자를 사면복권시켜 다시 그 직에 내보내는 ‘자유‘를 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진짜 보수인 내가 보기에도 ’더블플러스곤란‘하다.
근데 ‘스마트폰’ 역시 잡스가 ‘조지오웰’식으로 만들어 낸 말이 아닐까요? 스마트폰을 쓰면 쓸수록 ‘스마트’해지기는커녕 똥멍충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