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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Feb 14. 2024

선과 악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리뷰 / 신작, 드라마 추천




살인자ㅇ난감 (A Killer Paradox, 2024)

"선과 악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공개일 : 2024.02.09 (넷플릭스)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범죄, 색다른, 긴장감 넘치는

러닝타임 : 회차당 평균 50분대, 총 8화 425분 (크레딧 포함)

감독 : 이창희

출연 : 최우석, 손석구, 이희준, 김요한, 최선우, 권다함, 정이서

개인적인 평점 : 4 / 5



웹툰 살인자 ㅇ난감이 연재되던 때, 웹툰을 어느 정도보다 불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하차했었다. 단순한 그림체임에도 불구하고 웹툰이 주는 긴장감과 불쾌감이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드라마화된 <살인자ㅇ난감>을 볼지 말지 조금 망설였다. 그러다 “그래 1화를 봐보고 별로면 끄자”하며 큰맘 먹고 1화를 눌렀는데, 어라? 정신 차려보니 5화가 끝나있었고 시간은 늦은 새벽이 되어있었다.


웹툰 연재가 시작된 시점은 2018년.. 지금은 2024년. 그동안 여러 영상물에 노출되며 불쾌감과 자극에 단련된 덕분에 이 드라마가 주는 자극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맷집이 생겼나 보다. 하지만 살인범 캐릭터를 다루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드라마인 만큼 폭력 묘사가 빈번하게 나오니 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에겐 절대 권하지 않겠다.


강한 몰입감을 가진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은 몰입감이 상당히 강한 드라마다. 커다란 대립각을 세우는 두 인물이 주는 긴장감과 시선을 잡아끄는 신 전환 기술. 드라마 속 인물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배우 캐스팅, 익숙한 공간이 주는 현실감 등이 모여 엄청난 몰입감을 만든다.


스포가 없는 한도 내에서 짧게 이야기해 보자면 우선 살인자 이탕과 형사 장난감이라는 두 인물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긴장감, 반대편에 위치한 둘의 이념이 뒤엎어지며 생겨나는 여러 질문들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초반부를 지나면 이탕과 장난감 이외에도 이야기를 더욱 크게 확장시키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야기의 텐션이 처질 틈이 없다. 거기에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와 한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신 전환 기술이 한층 몰입도를 높인다.


능숙한 살인범이 아닌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탕이 주인공인 만큼 드라마 초반부엔 편의점, 작은 자취방, 오래된 가정집, 대학 강의실 등 상당히 일반적이고 익숙한 공간들이 활용된다. 자칫하면 흥미가 없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살인자 ㅇ난감>은 오히려 이 공간들을 제대로 이용해 현실감과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 건 이탕의 방이다. 그의 방에 붙어있는 찌든 벽지를 보며 이탕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확 와닿았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모호한 경계


<살인자ㅇ난감>은 평범하다 못해 순하디 순한 대학생 이탕이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살인자가 된 후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이야기는 이탕이 전역한 후 약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된다. 그는 또래 남자들처럼 학교에 복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은 평소처럼 지루했고 평소처럼 별 볼일 없었지만 이탕은 왜인지 그날따라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는 한순간에 살인자가 된다. 항상 가해자가 아닌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로 살아왔던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탕은 공포와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집안에 틀어박혀 벌벌 떤다. 하지만 운수 좋게도 이탕이 남긴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다른 사건이 연루되며 그는 살인범으로 잡혀갈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며 죽은 사람이 품고 있던 비밀이 밝혀지고 이탕은 본인이 살인범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된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보통의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선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탕의 반대편엔 형사 장난감이 있다.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그는 사건의 특이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냥개 같은 인물이다. 그는 이탕과 대립각을 세우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칠게 이탕의 뒤를 쫓는다. 나는 장난감을 다소 무능하게 느껴지는 형사들 사이에 우뚝 서있는 커다란 목석같다고 느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꺾이지 않는 단단함과 집요함,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올곧은 시선을 가졌기 때문이다.


장난감은 초반엔 이탕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를 한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아닌 2차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장난감은 이탕을 보며 ‘장난감’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름 때문에 무시당하며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이탕이 죽은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 충격받은 것이 아닐까 싶어 다시 이탕을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과 우연이 쌓여가면서 이상함을 감지한 장난감은 이탕을 피해자와 가해자 그 사이에 두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탕을 가해자로 분류하게 된 그는 이탕의 뒤를 쫓는다.



이탕 외에도 <살인자ㅇ난감>에서는 여러 사건과 캐릭터들을 보여주는데 그들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탕에 의해 피해자가 된 인물들은 결코 무결하지 않은 가해자였고,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이탕은 안티히어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형사가 쫓고 있는 연쇄 살인범이다. 이 상황은 과연 그의 살인이 정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가 죗값을 물을 권한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는지 등의 복잡한 질문을 남긴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보통의 정의를 벗어나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들


<살인자ㅇ난감>의 초반부를 볼땐 <비질란테>가 떠올랐었다. <비질란테>와 <살인자ㅇ난감>은 주인공이 범죄자를 물리적으로 심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질란테>의 주인공 김지용은 정보를 이용해 계획적으로 심판할 범죄자를 찾고 <살인자ㅇ난감>의 이탕은 어쩌다 죽인 사람들이 알고 보니 죽어 마땅한 범죄자였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아무튼 주인공이 범죄자를 해하고 그를 쫓는 형사가 있다는 점에서 둘의 결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비질란테>가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를 중심에 두고 흘러가는 느낌이 있었다면 <살인자 ㅇ난감>은 정의고 뭐고.. 각 인물들의 본능에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탕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한순간의 선택으로 살인범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범죄자를 골라내는 촉이 좋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내가 죽이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란 걸 알기에 망설임 없이 살인을 한다. 이런 연쇄 살인범이라 하면 냉혹하고 악하기만 할 것 같지만 드라마 후반부의 이탕은 죽음과 죄에 관련해 공포에 떨고 결국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


이탕을 쫓는 장난감은 형사다. 형사는 선과 악 중에 선을 골라야 하고 범죄자라해도 사람을 헤쳐선 안되는 직업이다. 그런 장난감 앞에 꼭 잡고 싶었던 범인이자 아버지를 폭행한 전직 경찰 송촌이 나타난다. 송촌은 겨우 아버지를 붙잡기로 결심한 장난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난감의 아버지를 죽인다. 커다란 분노에 사로잡힌 장난감은 형사로서 송촌을 잡기 위해.. 라는 사명보다는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송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본능에 떠밀려 악한 일(살인)을 행한다.


장난감의 아버지와 송촌은 동료 형사였다. 형사는 부정부패, 범죄와 연루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장난감의 아버지는 마약 거래에 연루되어 있었고 송촌은 선배 형사인 장난감의 아버지를 폭행하고 차후엔 연쇄 살인범이 된다.


이탕과 송촌의 살인을 도왔던 노빈은 어릴 적 강도 사건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은 인물이다. 살인범에 의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라 하면 누구보다 살인범을 증오할 것 같지만 노빈은 오히려 나의 가족을 죽인, 죽어 마땅한 놈들을 죽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살인범을 돕고 무시무시한 살인범 송촌을 만들어낸다.



이탕, 장난감, 장난감의 아버지, 송촌, 노빈까지.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은 모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따르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본능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려움에 떠는 연쇄살인범, 사람에게 총을 쏘는 형사, 살인범을 돕는 피해자, 범죄를 저지르는 형사라니. 뒤틀린 이 이상한 세계관 안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면 누가 나쁜 놈인지 착한 놈인지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죽어도 싼 놈을 죽인 놈은 착한 놈인가? 아님 그놈도 사람을 죽인 죽어도 싼 놈인가?”, ”하지만.. 그래도 탕이는 응원하고 싶은데…”, “장난감은 총 쏠만했잖아!” 드라마를 보면서 이 복잡한 말장난과 고민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살인자 ㅇ난감>에서 흑과 백을 명확히 따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악을 잡기 위해 선을 포기한 형사, 얼떨결에 선택한 악으로 악을 처단하게 된 살인범. 분명 다들 나쁜 짓을 하긴 했는데, 나쁜 놈이 맞는데.. 나쁜 놈이라고 못하겠다.



<살인자 ㅇ난감>은 정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아주 복잡한 드라마였다. 인물의 직업이 형사든 연쇄살인범이든 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지금 어두운 곳에 서있는지 밝은 곳에 서있는지 그것 또한 중요한 게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사이 착실히 쌓여온 각자의 정당성이 터지는 순간, 선과 악, 흑과 백의 경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살인자ㅇ난감>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듯하다. 살인자ㅇ난감, 살인장난감, 조금 더 변형 시켜보면 살인자+장난감. 살인자 그리고 살인자의 ‘자’에 이응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장난감이라는 이름.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살인자(이탕)와 난감이라는 이름 사이에 이응 하나만을 더했을 뿐인데 둘의 거리감이 확 좁혀진다. 선과 악도 이들의 이름처럼 서로 먼 곳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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