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홀로 여행하기> 리뷰, 후기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94분
감독 : 이시바시 유호
출연 : 오카모토 레이, 오사무라 코키, 사카노우네 아카네, 이와타 카나데
개인적인 평점 : 3 / 5
나 홀로 여행하기>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로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이시바시 유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으로 너무 소중하기에 오히려 자주 열어볼 수 없었던 기억의 서랍을 정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작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가 그늘에서 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영화였다면 <나 홀로 여행하기>는 그 햇빛 아래서 묵은 이불 먼지를 털어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듯하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도쿄에서 10년 동안 바쁘게 일만 해온 주인공 미사키는 일과 사랑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미사키는 동료들이 준 꽃다발 속 카드, 끝이 좋지 않았던 전 애인과의 연결고리들을 모두 도쿄에 버려두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고향에 도착한 미사키는 여전히 그대로인 장소들을 누비며 가족,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마침 중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미사키는 첫사랑 소년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한다. 하지만 중학생 미사키와 어른 미사키를 설레게 만든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그가 사고로 죽었다는 동창들의 대화만 들려온다. 미사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소년을 잊지 못하고 소년과 함께했던 장소들을 다시 찾는다.
미사키의 이야기엔 빈 부분들이 있다. 대부분의 동창들이 미사키와 소년이 사귀었다고 생각할 만큼 두 사람은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의 공유 받지 못하고, 미사키가 소년에게 어떤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는지 소년은 미사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었는지도 알 수 없다. 관객은 그저 미사키의 마음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그가 상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이 간혹 지난하고 느리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나 홀로 여행하기>는 이에 개의치않고 정직하게 나아가며 끝내 그 빈 부분을 채워줄 다양한 상상과 감정들을 손에 쥐어준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
미사키의 책상 속 MD Disc와 도서관의 의미
미사키는 본인조차도 ‘별거 없었다’, 자연히 소멸한 썸이었다고 말하는 첫사랑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오래 다닌 직장, 연인과의 이별은 쉽게 했으면서 오래전에 지나간 첫사랑은 왜 잊지 못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그와 제대로 된 이별의 인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처음 고향으로 돌아온 미사키는 책상 서랍에 보관하고 있던 케이치를 위해 만든 MD를 발견한다. 매일 음악을 듣는 케이치를 위해 미사키가 마음을 담아 만든 물건. 미사키는 그것을 발견하고 조금씩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미사키는 어른이 된 케이치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 또한 뒤늦게 전해 듣게 된다.
미사키는 절망한다. 하지만 이 상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헤맨다. 그런 그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건 케이치가 남긴 추억들이다. 미사키는 케이치의 친구인 코스케를 통해 어른이 된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들려줬던 노래를 떠올리고, 함께했던 장소를 찾아가며 케이치의 빈자리를 천천히 다시 채워간다.
미사키는 마지막으로 추억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케이치를 마주한다. 그는 태풍을 뚫고 처음 케이치와 대화를 나눴던 도서관을 찾는다. 하지만 미사키가 중학생일 땐 태풍에도 문을 열었던 도서관은 태풍을 이유로 휴업에 들어간 상태였고 미사키는 그 닫힌 문 앞에서 비로소 변화와 상실을 흠뻑 받아들인다.
태풍 같은 상실의 시간이 지나간 후 미사키는 케이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는 케이치의 방에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MD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동생 아야노는 미사키에게 묻는다. “끝났어?” 미사키는 답한다. “응.”
느릿한 이별을 이해하는 마음
애정하는 것을 마음에 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놓아주고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미사키는 이 어려운 과정을 밟으며 후회하고 슬퍼하고 또 자신을 미워하기에 이른다.
미사키는 다른 동창들처럼 상실을 툭툭 털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케이치의 어머니에게 “케이치를 잊을 수 없었던 제가 싫었다.”고 말하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잊고 살았던 첫사랑을 갑자기 떠올리고 오래된 추억 속을 헤매는 미련한 마음. <나 홀로 여행하기>는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이 마음을 전면에 두고 천천히 보듬는다.
극중 인물들은 슬픔에 빠진 미사키를 이해하고 느릿한 그의 회복 과정을 지켜본다. 이시바시 유호 감독은 미사키를 조용히 관망하다 슬그머니 미사키와 그를 닮아있을 누군가의 손을 감싸 쥔다. 그리고 따끔한 재촉 대신 보드라운 토닥임과 이해를 선택한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ovie_read_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