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으로 맞이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시기에 내가 한 선택
적지 않은 나이,
다음 스텝을 생각하지 않은 채 퇴사를 감행했다.
퇴사 직후 약 2주 간 여행을 다녀왔고,
일상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와 백수의 삶을 마주하니 막상 무엇을 하면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퇴사 전, 그래도 뭔가 계획은 세워야 한다면서 스몰브랜드를 만들어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명확한 방향성은 고사하고 동기부여 자체도 부족한 생각이었기에 금방 휘발되었다. 그저 뜬구름 잡듯, 지금 내 앞에 놓인 빈칸에 뭐라도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써넣은 사실이 금세 탄로가 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덜컥 겁이 난 나는 하루 루틴부터 계획했다. 잠도 많은 데다가 스스로 늘어지면 얼마나 한없이 늘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점심-저녁까지 빼곡히 루틴을 세웠다. 처음 루틴을 지키려고 했던 날이 기억에 나는데, 루틴을 겨우겨우 따라가다 저녁이 가까워올 무렵 루틴을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이틀을 내내 앓아누웠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루틴을 써 내려갔다. 일단은 지키고 싶은 루틴을 최대한 써 내려갔다. 특정 시간에 특정 일을 하겠다기보다 하루 중에 이것들은 매일 지키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 그렇게 써 내려간 루틴을 다 지키는 것이 아닌,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몇 개만 선택해서 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가지치기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목표도, 별다른 의미도 없는 루틴 지키기가 시작되었다.
매일 지켜야 하는 이유나 동기 없이 그날그날 적힌 루틴에서 하고 싶은 걸 골라서 하고 있었다. 목표나 목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의미 없는 날들이 쌓여갔다. 마음 저 한 편에서는 의미 없이 내가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걸 알면서도 루틴을 계속 이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장 하고 싶은 것이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루틴이라도 해야 된다는 강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2주쯤 흐른 뒤 나는 결국 터져버렸다. 눈물이 터진 건 아니고 감정이 터져 모든 것이 다 가라앉았다. 그러곤 외면했던 나를 마주했다. 뭐가 하고 싶느냐고, 뭘 해야겠느냐고 마주한 내게 물었지만 나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내가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그중에 뭘 할지 몰라 걱정인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니. 집요하게 내게 자꾸 물어도 나는 대답을 피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심문하다 결단을 지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이 선택은 네가 한 거라고. 불안해도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 무엇을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지운채 내게 끊임없이 물었다.
’ 너 지금 뭐 하고 싶어?‘
그리고 바로 떠오른 그걸 했다.
여기서의 질문은 그 전의 질문과는 달랐다. 이전엔 미래를 위한 질문이었다면 이번 질문은 현재를 위한 것이었다. 배가 고픈지, 뭘 먹고 싶은지, 자고 싶은지, 산책을 하고 싶은지, 릴스를 보고 싶은지와 같은 바로 휘발되어 해결되는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삶에서의 참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 에너지를 크게 쓰지 않아도 되는 일들에 대한 질문. 그런 질문엔 생각보다 빠르게 대답했다.
물론 한 번씩 불안이 밀려왔다.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밀려오면 그럼 다른 어떤 걸 지금 당장 제시할 수 있겠느냐고 내게 되물었고 여전히 아니란 대답이 나왔기 때문에 다시 현재를 질문하고 해결하며 지냈다.
스스로 약속했다. 일단 지금의 욕구만 해결하며, 당장 눈앞에 놓인 일들만 해결하며 살아보자고. 그렇게 딱 한 달만 살아보자고.
아마 그 ‘한 달’이라는 먼 듯 가까운 기한이 그 기간의 나를 버티게 해 준 또 하나의 장치가 되어줬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현재의 사소한 욕구들을 밀어 두고 채워주지 못했던 것 같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며 얘기했지만 결국 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묻어두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한 그 선택이 결국 내가 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걸 스스로에게 바로바로 채워주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래를 위해 하고 싶은 게 전혀 없던 백수는 매일매일 당장의 욕구만 해결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허비하며 지내는 날이 또 언제 오겠냐는 말로 애써 불안한 마음을 덮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