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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린 Aug 14. 2020

어제의 즐거움

 나의 쓰레기 부심

Garbage Bin : 쓰레기통

쓰레기통엔 어제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만약 어제 오렌지를 먹었다면 쓰레기통에 든 오렌지 껍질엔 맛있게 먹었을 때의 기쁨이 묻어 있을 거예요. 누군가 가방에 든 쓰레기 조각을 보고 무엇인지 묻는 다면 '어제의 즐거움' 이라고 답해보세요.

<꼬마안데르센의 사전> 18쪽 공살루M.타바리스, 마달레나 마토주



  'OO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친구라든지, 부모라든지.. 나는 그 곳에 과감히 '쓰레기'를 넣어본다. 쓰레기통에는 어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어제 먹은 식사와 장 본 것들의 영수증, 먹고 버린 아이스크림 껍데기, 세수하고 나서 스킨 바를 때 쓴 화장솜, 종이 접기 하고 남은 종이조각들, 다 쓴 치약, 택배상자, 맥주캔. (리얼 우리집 쓰레기)

  어떤 빵을 좋아하는 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 지, 어떤 치약을 쓰는 지, 어떤 맥주를 좋아하는 지 낱낱이 까발려지는 곳이 바로 쓰레기통이다. 정말이지 '어제 먹은 오렌지 껍질의 즐거움'도 또한 '어제 밥하기조차 귀찮았던 고단함'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본다. 우리가 저승에 갈 때 지난 날의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을 모두 가지고 가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떳떳하게 저승길로 갈 수 있을까. 나는 그래도 평균의 대한민국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가볍지 않을까. 수 천개의 일회용컵 수백개의 스티로폼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있지도 않는 상상을 하면서 '쓰레기 부심'을 한번 부려본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상상이 아닐 지도 모른다. 2018년 쓰레기 대란에서 온 국민이 느꼈듯이 '쓰레기'가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으로, 필리핀으로 보내서 없는 척하고 살았을 뿐이다. 이제는 중국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이상 수입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쓰레기를 이제 스스로 이고 지고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다시 국내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쓰레기 산을 만들어 내거나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해서 보이지 않는 '먼지'화 시켜버리고 있는 것같다.

 

  '쓰레기'는 '어제의 즐거움' 그 자체가 아니다. 남겨진 어떤 것이다. '맛있었던 느낌'이 쓰레기가 없다고 하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렌지를 사왔던 '플라스틱 비닐'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어제의 즐거움'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 '일회용컵'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어제 마신 아아의 맛'이 더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어제 내가 그랬다는 사실과 함께 그저 남겨진 것이다.


  다시 한번, 쓰레기는 우리 삶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꼭 있음을 통해 나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쓰레기 없음' 으로 나의 간소한 삶을 증명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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