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샬린 Aug 13. 2020

나는 왜 쓰레기 덕후가 되었나


  남편이 자꾸 시장 보고 장본거 짐정리하기도 전에 사진 부터 찍어올리는 걸 보고서 한소리 한 적이 있다. 냉장고에 넣어버리면 사진과는 영엉 멀어지기에 냉장고 넣기전에 빨리 찍은 건데 남편 눈에는 이렇게 보였나보다.
“자랑할려고 제로웨이스트하냐?”
난 왜 쓰레기 없는 삶을 살기로 결정하게 된 걸까?

환경부에서 진행했던 <안쓰고산다 쓰맘쓰맘편> 인터뷰 당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제로웨이스트를 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이 있나요? 이익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할 동기를 얻을 테니까요.”
이익? 나한테 이익이 없다. 대체품은 비싸지, 포장 안된 거 사려면 고생해야지, 그래도 할 수 없어서 아예 안쓰기로 결정한 것들..포기하고 사는 삶. 뭐가 이익이란 말인가?
“제가요 이익은 남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공헌감 밖에 안떠오르는데요 실질적인 이익이 없나 싶어 생각중이예요.”
결국엔 물건 살때 신중하게 고르는 삶의 태도를 얻었다고 했나? 그랬다. 그런 것도 이익이라면 이익이겠다.

나는 자랑할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익을 얻고자하는 것도 아니다. 자랑하려고 하면 보이는 곳에서만 하면 될 것이고 이익을 얻고자 하면 제로웨이스트를 할 이유가 없다. 난 어느 순간 그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는 것이 제일 가깝다. 쓰레기 산이나, 고래나, 거북 같은 이미지들을 보면서 쓰레기인지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인지 쓰레기를 만드는 인간인지.. 그모든 것인지.

  아주 어릴적 일이 떠오른다. 숲을 파괴하고 도로, 건물 등을 마구 짓고 있다는 내용을 학교에서 배웠나보다. 거기에 위협 또는 마찬가지로 혐오감을 느낀 나는 문득 도로를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팩 떼듯이 좌르르르 떼버리면 어떨까..떼고싶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면 모든 길은 연결되어있기 마련이니까 한쪽끝을 잡고 잡아당기면 팩떼듯 떼지고 푸른 숲만 남을.. 환상적인 상상을 종종 했다.
맑고 푸르름에 대한 동경. 그것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혐오.
일종의 결벽증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은 세상더럽게 지내는 내가 결벽증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떤 이익이나 자랑,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소나마 뿌듯함, 세상에 대한 공헌감은 있지만 본질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견딜수 없어진 것 뿐이다. 혐오감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혐오스러워질순없으니. (그렇다고 극단적 자책이나 그렇게까지 느끼는 건 아니니 걱정마시길요.) 그 감정과 가장 가깝다는 느낌이다.
 

같은 제로웨이스트라는 현상을 이야기하더라도 각자에게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되었는지에 관한 그 만의 서사가 존재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마 그들 각자의 환경에 관한 한 권의 에세이집이 나올지도. (사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내가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글을 정리하다보니 상상이 현실이 된 기분이다.)  나의 동기는 이처럼 철저히 개인적이기에 다른 사람의 동기를 유발할 수가 없다. 뭐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너는 왜 그렇게 사는가? 하고 물으면 답은 “쓰레기가 싫어요” 인데 할말이 없다. 나의 싫음이 타인에게도 싫음이 될수는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쓰레기’라는 주제를 이야기 할 때도 ‘이익’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동기를 유발시켜야 한다는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낀다. 그것자체가 우리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익’중심의 사고가 아닐까? 나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주로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당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플라스틱이 된다는 주제로 관심을 끌곤 한다. '네 건강이 위험해! 그건 분명 너에게도 손해지?'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 본래 '이기적' 이어서 나에게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그런 존재인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쓰레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