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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런 Jan 16. 2022

관음증의 사물들: 프롤로그

말을 걸었을까, 듣게 되었을까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직접 겪었으니까요. 이 이야기의 장르는 공포 로맨스 일수도 또 누군가에겐 모험이자 얼터너티브 노블일 수도 있어요.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고 싶어요. 눈앞에 글이 펼쳐진 지금. 당신은 보고 있나요. 아니면 제가 보여주고 있나요. 비슷한 물음이 머릿속을 채우던 날이었어요.

   우리 몸에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곳은 놀랍게도 뇌에요. 하루 24시간 생각만 해도 9시간을 걸은 것과 같은 칼로리를 소모하죠. 그래서 생각 노동자인 제가 식탐이 많은 걸까요. 생각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꽤나 유용해요.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만들고, 명장면 모음집 SNS를 보고 실망하지 않게 눈을 돌려주기도 하죠. 하지만 그걸 본업으로 삼다 보면 일상에서도 일이 이어지는 게 문제예요. 샤워할 때도 7호선에 승선할 때도 가끔은 꿈속에서도. 빨래 짜듯 머리를 쥐어짜다 보면 어느새 뇌가 건조해져요. 영감의 바다에 한 번 푹 적시고 오고 싶지만 직장인에게 그럴 여유가 어딨겠어요.


   생각 릴레이를 하다 보니 다 왔네요. 지하철 문이 열리고 약속한 것처럼 일제히 출구로 걸어가고 있어요. 단 하나의 익숙한 얼굴도 없지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져요.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매 편이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이잖아요. 나에게도, 지나가는 행인 5에게도 주인공 같은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들렸어요.


   또각.

   또각.

   긴장하셨네요?

   순간 내가 말했나 싶었어요. 오전에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어 조금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또각.

   또각.  

   심박수 빠른 것 좀 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많이 준비했잖아요.


   사람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고. 아래에서 들린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봤어요.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네요. 착각이겠거니 하고 다시 걸음을 걷는데
   

   아아, 구두예요 저는.

  

   구두가... 걸었어요... 말을

    

   당신이 발걸음을 멈추면 제 심장도 멈춰요
   구두 소리가 제 심박수거든요.
   그래서 알았어요. 빨리 걷는 당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구두가 걸음이 아니라 말을 걸어요. 아 아니면 내가 듣게 된 것일지도. 무섭기도 하면서 이 이야기에선 내가 주인공인가 하는 마음에 설레기도 하네요. 심장은 더 크게 뛰었고 발걸음은 더 빨리 뛰고 있어요.

   구두가 말을 걸었나요? 아니면 제가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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