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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lee Jul 25. 2020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서른다섯, 모처럼 연애의 시작

요즘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매일 전화로 일상을 얘기할 사람이 생겼다. 평소 열 시 이전에 잠을 청하던 내가 누군가와 밤늦게 통화를 하다니... 엄청난 변화다. 이렇게, 요즘 나는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삼십 대가 되고 나서 '대화'가 많은 연애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내 마음이 더 기울 땐, 언제쯤 상대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바심이 났. 반면, 내 마음이 작을 땐 대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십여 년 간 쌓온 각자의 성향은 어긋나기 마련이기에, 서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 적당히 무관심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밥을 먹고 카톡 몇 개 주고받는 그런 사이.




그를 만난 건 소개팅에서였다. 그런데 연락처를 주고받 , 중간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한 달이 지나서야 그와 만날 수 었다. 타이밍도 안 맞고 서로 사는 곳도 멀기에, 어차피 잘 안될  같았다. '그냥 밥이나 맛있게 먹자' 하고 나간 자리였는데, 보다 선하고 동안인 인상에 마음이  번 누그러졌다. 그리고 유쾌하게 이어지던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는 자기 사정으로 만남이 늦어져 미안하다고, 토요일 저녁에 시간을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나 역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과 즐거움이었기에 '오늘 나오길 잘했다.'라고 대답했다.


첫 만남 이후, 그는 종종 근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솔직히 나는 통화를 싫어한다. 화는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좀 부담스럽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단체 대화방에서 소통하는데, 대체 한 번 만난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자연스러웠다. 자신의 하루가 어땠으며, 내가 회사에서 무탈한 하루를 보냈는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또 잘 들어준다. 이런 게 연륜인가 싶을 정도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그와의 통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 세 번, 나는 그와의 만남이 더욱 즐겁고 편안해졌다. 그의 대화는 일방적이지 않다. 자기 얘기를 먼저 들려주 게 질문한다. 회사, 가족, 친구, 학창 시절 등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적인 부분을 불털어놓기에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선호한다. 상대가 누구든 내 말을 진득이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 탓에 웬만하면 입을 다무는 편이다. 그런데 그를 만날 때 나는 무장해제가 된다. 묵혀두었던 수다 본능이 폭발한다. 겨우 서너 번째 만남에서 깊숙한 나의 이야기 - 부모님의 이혼 - 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말해줘서 고맙다"며,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와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또 한 번 묻는다.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있지?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저자 한성희)라는 책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30여 년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함께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습관부터 내면의 상처, 콤플렉스까지 대면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어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둘 사이에 생기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모여 그들만의 콘텐츠가 된다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나는 딱 3일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라고 말한다.

첫째 날에는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둘째 날에도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셋째 날에도 "이 남자와 대화가 되는가?"


이렇게 대화가 중요한데, 왜 이전 연애에서는 대화하지 않았던 걸까.


사실 연애 극 초반에는 상대의 말과 행동이 다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 호기심, 공감대를 찾는 기쁨, 이 사람은 특별할 거라는 기대감. 들뜬 기분에 내 마음을 과대평가하는 걸 수도,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이렇게 대화하는 게 즐겁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아니라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제는 누군가와 도란도란 통화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개정 보증판)> 표지, 저자 한성희, 출판 메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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