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자 후배가 나란히 선물 박스를 내미는 모습에 순간, 둘이 만나는 사이인데 나만 몰랐나, 싶었다.
"에이 아니에요! 하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럼 이건 뭐야 뭐야"
이거 과장님한테 드리는 선물이에요.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죠? 스승의 날!
세상에, 나를 위해 준비했다니.
그 2명은 작년 여름, 우리 부서 인턴으로 들어온 친구들이다. 나는 멘토로서 업무 소개, 과제 수행을 도왔는데, 워낙 강도 높은 과정이라 한 달 내내 붙어 있으며 정이 많이 들었다. 이들은 이제 어엿한 신입사원으로, 한 명은 우리 팀, 또 한 명은 다른 팀에서 일한다. 한창 바쁠 텐데, 뭘 챙겨준 것도 없는데 이런 감동을 주다니.
리본 다시 묶기는 실패, 귀여운 향초 선물.
사무실로 돌아와 한참 선물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1. 정말 고맙고 예쁘고 기특한 후배들이다. 더 잘해줘야지
2. 뿌듯하다. 여기저기 자랑해야지
3.벌써 10년 차가 되어 '멘토' 대접을 받다니. 세월 참 빠르네
4.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후배일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한 게 언제였지?
네 번째 생각에 미치자, 10년 간 만났던 상사, 선배들이 떠올랐다. 나는 유능하거나 따뜻하거나, 혹은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갖춘 분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걸 행운으로 여겼고 우리 회사의 장점이라고 주변에 말해 왔다.
그런데, 정작 함께했던 상사와 선배들에게는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지내온 거다.
'표현 안 해도 알겠지, 회사에서는 너무 호들갑 떨면 안 좋아'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좋은 상사를 만난 건 순전히 내가 운이 좋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선배니까 당연히 나보다 유능해야 한다고,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착각했다.
내가 선배가 되어 보니,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었는데...
'매일 마주치니까, 낯 간지러우니까, 조금 무심한 성격으로 보여야 덜 피곤하니까'라는 핑계로 아껴뒀던 말과 행동들. 이제는 좀 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