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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 Jan 10. 2023

촌스러운 사람

아직도 글을 펜으로 쓰는 사람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사라진다. 기억은 대체적으로 짧고, 순간이라 금세 잊히고 만다. 그럴 때면 손을 바삐 움직여야한다. 헤어진 연인의 사라진 향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펜을 움켜쥔다. 검은 선들이 마구잡이로 휘갈겨지면 그 아름다운 것들의 부산물들을 매만지고, 그리워한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디지털기기를 2-3개씩 휴대하고 있는 세상에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여전히 촌스럽게 느껴진다.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을 정리하여 적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 또한 누군가가 보면 참 투박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직도 핸드폰엔 2년 동안의 새로운 펌웨어 업데이트가 밀려있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말하며, 느리게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두 박자 아니, 세 박자는 늦는 모습 때문에 자주 옛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가능한 껌처럼 길게 늘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아이가 첫 걸음마를 떼는 순간들처럼 그런 찰나의 것들을 잊지 않고 싶다. 나의 안에서 타인의 세계로 확장되는 경이로움이 더 이상 휘발되지 않게 하려고 오늘도 펜을 든다.

받는 이가 없는 편지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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