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직장에 출퇴근하는 엄마, 아빠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법한 광경이 있다. 출근이나 퇴근을 하는 나를 마중해주는 아기, 그 모습을 보며 하루의 피로가 삭 날아가는 기분이 드는 나.
뻔하다면 너무나 뻔한 그 그림을 돌을 4일 앞둔 어떤 평일에 겪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네가 벌써 돌이구나, 실감이 난다.
마지막 한 달, 그림으로 남기기에는 애매했던 큰 변화를 아기는 겪었다. 12개월을 맞이하면서 섰다가 앉고, 기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엄마 아빠의 동작 말투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고 흉내내기 시작했다.
습득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져서 하루에 두, 세 개씩 새로운 단어를 알아듣는다. 감정을 드러내고, 울 것처럼(절대 울지 않는다) 표정을 지으며 도와달라 놀아달라 보채기도 한다. 그야말로 1명의 사람이 됐다. 엄마는 가끔 "우리 집에 정말로 애기가 있네!"라며 놀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엄마 아빠는 저녁이면 작년 이맘때쯤 사진을 열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동시에 그 때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모습들이 약간(아ㅏㅏㅏ주 약간)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옛날을 그리워하다 지금의 귀여움을 살피지 못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기록해둔다. 언젠가 세 식구가 함께 맥주 한 잔 하며 지금의 기록들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하고.
사실, 이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 1년간의 기록을 남겼다가 아기가 돌이 됐을 때 책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한 권, 아기에게 한 권 선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치지 않고 2, 3주에 한 꼭지씩을 그리고 썼다. 브런치와 연계된 개인출판 플랫폼은 참 간편했다. 일주일만에 인쇄본이 나왔으니 말이다.
다행히 날짜에 맞춰 도착한 책을 엄마, 아기,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한 권씩 전달했다. 소소하고 짧은 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은 아기에게 쓴 짧은 편지로 마무리했다. 언젠가 지금의 엄마 아빠와 비슷한 또래가 됐을 때 그 책을 다시 한 번 꺼내 읽어봐주길 바라면서. 본의 아니게 '아빠체'가 되어버린 편지를 아래에 남겨둔다.
아, 그리고 댓글도 공유도 없었지만 일기 같은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글은 훈훈한 척 했지만 사실 행복과 고통이 반반이에요. 그래도 도전해보세요. 결혼도 후회할 거 알면서 해보라고 하잖아요. 인생, 한 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잖아요. 나름 행복하거든요.
사랑하는 솔이에게
솔아, 이 글을 각잡고 읽을 때가 언제일지 아빠는 모르겠다. 이제 갓 돌을 앞둔 네가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다른 아기들보다 음악을 좋아하고 말하는 걸 좋아했던 것 만큼 누구보다 씩씩하고 쾌활할 것이라고 믿어 본다.
이 책 마지막을 생각하며 항상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머릿속에 생각하곤 했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다. 단지 엄마도 아빠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너는 누구보다 구김 없고 맑게 키우고 싶었어. 혹시나 지금 네 마음 속에 안타까움이나 원망이 있거든 작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솔아, 아빠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바로 죽음이야. 얼마나 무섭니.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고, 즐거운 미래도 불행한 미래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된다니 말이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를 보면서 처음으로 죽는다는게 무섭지 않아졌어.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너는 나에게 크고 결정적인 존재란다.
말로 밥 벌어먹고 있지만 정작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구나.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래. 열 살이든, 스무 살이든, 환갑을 앞두고 있든 상관 없이 이 책을 보면서 한 번이라도 피식 웃었으면 좋겠다.
- 2020년 5월 17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