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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Aug 26. 2020

부동산, 의대 정원 확대, 정부

진정성을 증명할 다음 걸음을 지켜봅시다

나는 비정규직 제도에 찬성한다.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한 것 말고, 이른바 '사'자 직업,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이라고 받아들이는 전문직. 의사, 변호사, 그리고 '사자' 직업은 아니지만 '기자'와 '교수' 그리고 일부 고위 공무원까지…. 보통의(근로기준법의 범주 안에 있다면) 노력만 기울인다면 웬만해서는 굶을 일이 없지만, 개인이 적절히 노력을 기울인다면 금전적, 사회적 영광을 누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중 일부가 노무현-문재인 정권이 정책적으로 시장 확대를 추진했던 직종과 일치한다. '개혁' 대상으로 자주 꼽히는 직종이기도 하다. 이런 공통된 인식이 나타나는 게 우연이라고 하긴 어렵다. 나 또한 2000년대 초반 저물어가던 학생 운동을 지켜보면서 저런 인식을 키워온 것이니까.


이런 인식적 공통 선상에서, 그들의 뇌구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보려고 한다.



'부당한 특권의 해체'라는 신념


이른바 '87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은 이렇게 요약된다. '과거 정권 또는 자본에 의해 형성된 특권의 해체'. 권력이라 함은 과거의 독재 정권일 수도 있고, 혹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만들고 키워온 제도적이고 권력적인 사회 조건들일 수도 있다. 자본이라 함은 이 과정의 결과 또는 대가로 주어졌던 상대적 부의 집중이다.


뻔한 소리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이러한 인식의 틀로 정부를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빨갱이' '주사파' 혹은 '정의로운 정부' '달빛이 밝아요' 같은 극단적 시각에서 접근한 콘텐츠만 가득한 이유다. 이런 콘텐츠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입체적 접근을 어렵게 한다.


극단적인 시각 말고, '특권의 해체'라는 관점에서 지켜보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매우 일관되다. 먼저 부동산 정책을 보자.


정부의 인식을 관심법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부동산은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의 기본 수단에 가깝다. 그러나 과거 고성장 시대를 살았던 정권과 자본은 과도한 투기와 재개발로 부동산을 부의 축적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니 더 이상 투기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인식에 '현재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과 '부동산 침체가 가져올 부작용'에 의한 지지율 상실이라는 현실적 리스크가 결합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다리 걷어차기'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래도 신념은 지켜야 하니 여기까지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인식대로라면 2018년 대치동 고가 아파트 논란에 시달렸던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의 "원래 살던 곳이 강남이었을 뿐"이라는 해명도 이해가 간다. 살다 보니 가격이 오른 것은 그들의 '정의관'에 따르면 문제가 없다. 투기가 아니기 때문. 이런 인식이 있으니 다주택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도 '살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올랐을 뿐인데, 그 이유만으로 1주택을 하라는 건 부당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소 군색한 해명이지만, 뭐 어쨌든 그랬다는 말이다. 야당에게 '좌파 공세' 당할 것을 알면서도 토지 공개념을 자꾸 꺼내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 틀에서 보면 다 이해가 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도 이런 인식론으로 바라보면 그럴듯한 논리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란 우수한 정규 학업 성취, 의대 졸업과 면허증 취득으로 이어지는 단일 경로로 획득된다. 혹독한 수련 과정에서 획득하는 지식을 통해 권위를 얻고, 노력으로 명예를 얻으며, 그에 수반되는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그들의 독점적 지위 중 상당한 영역이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그 사람들’의 시각은 이렇다. "의료 서비스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수준에서 받아야 하는 기본적 권리에 가깝다. 그러나 의사들은 정권의 집중 육성의 대상이 된 이래 특권 계층화했다. 그러므로 허들을 낮춰(또는 다양화해?) 시장을 다변화하고, 궁극적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해 특권을 해소하고 본래의 목적(국민의 건강권 확보)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인식을 가진 정부에 '수가제 개선' '비인기 과목 공백' 등의 정책적 부작용을 이야기한들 제대로 입력될 리가 없다. 그들의 ‘정의’에 대한 인식의 틀에서 저런 걱정들은 극복해야 할 작은 걸림돌, 고려할 필요가 없는 부수적 요인, 혹은 특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반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특권'까지 혁파한다면

인정, 어 인정


이런 인식을 정부가 갖는 것 자체가 문제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이런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청와대로 간 것이고 청와대에서 180석을 가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사회 인식이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는 신념으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 부동산은 과거에는 개발 중심 논리의 첨단이었으며 도시빈민을 양산하는 주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10년대, 아니 2020년대 들어 부동산은 30, 40대에게 투자 수익을 바라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가 됐다.


의사라는 직업은 높은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동시에 닫힌 시장으로서 빈부격차를 키우는 대상이었지만, 그들 개개인에게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덕에 우수한 의료인이 나온 것이기도 할 테다.


누구의 인식이 옳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의 인식과 상황 변화 간에 시대적 괴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간극을 메우기에는 머리가 너무 굳어버린 것 같다.


그 신념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기 위해, 이 시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그들의 인식적 정의를 증명할 수 있는 확고한 '넥스트 스텝'이 하나 있긴 하다. 그들이 아직 청산하지 못한 마지막 특권을 혁파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의도로 불리는 정치개혁 말이다. 이들의 권위를 사회 일반의 서비스 수준으로 확대, 평준화하는 자기 파괴를 감행한다면 나는 이들을 향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잘못된 인식이든 어쨌든 일관성은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내로남불 정권'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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