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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09. 2022

새해본마니 바드떼여~

네 살 아기의 설 연휴 풍경

엄마 아빠 귀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들리지만 사실 "새해본마니 바드떼여" 정도로 채록할 수 있겠다...

"아빠가 '이놈' 하면 무섭고, 엄마가 화를 내면 슬퍼. 아빠가 화를 내면 '저리가!' 할 거야. 엄마가 화를 내면 조금 슬퍼서 이이 울거야."


이 글을 쓰기 30분 전, 자려고 침대에 들어온 딸이 저런 말을 했다. 솔직히 딸바보인 것은 맞지만,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이 아이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상상 이상이다. 선물을 받아도 뚱, 즐거운 일이 있어도 끄덕, 하고 마는 아빠랑은 정말 180도 딴판이다.(화는 냈지만 절대 큰소리는 안냈습니다ㅠ반성중)


네 살, 부모를 복사하는 시기?


아직 사회생활(?)을 통해 또래집단에게 본격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네 살 아기. 부모와 가정이란 안식처이자 배움의 장이다. 말투부터 행동거지, 표정이나 생활패턴, 습관까지...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부지불식 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행동을 따라하거나, 부모와 상호작용을 하며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패턴까지 익히는 듯하다. 정말 온갖 것을 다 배운다.


여담이지만 아빠와의 상호작용에서는 몹쓸 것을 하나 배웠다. 아빠의 '어색한 눈웃음'을 배웠다.(아빠는 워낙 표정이 없는 사람이라 눈만 사용해서 억지로 웃는 표정을 곧잘 짓는다) 아빠와 눈이 마주치면 눈만 웃으면서 애교를 부린다. 너무 귀엽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좋지 않다. 아빠의 웃는 얼굴이 누구보다 밝았다면, 그런 환한 미소를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모는 이렇게 별것 아닌 것에도 전전긍긍이다. 


절하는 걸 쑥쓰러워하면 어떡해, 걱정했지만 현실은...


설을 앞두고 엄마는 소소한 걱정거리가 있었다. 아이가 어른들이 많은 곳에서 절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어쩌나 신경을 썼다. 어른들의 채근에 참을 수 없을만큼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고통스러워하진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부끄러우면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절 안해도 돼"라고 친절하게 미리 일러줬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기우였다. 어린이집에서 큰절을 배워온 아이는 보란듯이 야무지게 두 손을 이마 위에 올리고는 넙죽 큰절을 올렸다.(물론 쪼그리고 엎드리는게 힘들어 다리를 쭉 펴고 엎드리긴 했지만) "새해본마니 바드떼여~" 인사도 참 잘했다. 한복은 공주님 옷 같았는지 몇 번을 입겠다고 덤비고 벗지 않겠다고 버텼다. 본가와 처가의 조부모에게는 그만한 애교가 없었을테니, 아빠로서 사위로서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뱃돈도 많이 받았다. 자꾸 "나는 파란색이 좋아!" 하기에 엄마와 합심해 "아줌마가 그려진 노란 돈이 제일 좋은 거야"라고 알려줬다...ㅋ 미안하다 우리 딸ㅎㅎ


기질, 아직은 걱정하지 않기로


그래도 30개월 넘게 아이를 길렀으니, 부모는 대충 우리 아이의 기질이 어떤지 안다. 아니,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24개월이 지나며 어느정도 감을 잡고 있겠지만, 실제 아이의 기질이 어떤지 단정하기에는 조금 이른 듯하다.


연구자료를 보면 유아의 기질과 관련한 내용은 대부분 만 3세 이상의 유아와 그 부모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만 3세가 되지 않은 네 살 아이의 기질을 단정하는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육아 고민? 기질 육아가 답이다!(최은정, 2019)>라는 책을 보니 "4세 미만의 아이들은 아직 사회적 질서에 대한 노출 기회가 적고 부모의 사회적 규칙에 대한 지도가 빈약할 수 있으므로 기질 검사 시 아이가 가진 규칙성의 정도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고 적고 있다.


만 3세도 되지 않은 아이의 기질을 너무 단정적으로 판단하거나, 예단하지 않는 습관이 필요한 듯하다. 지금 뿐만 아니라 아이가 13살이 되도, 23살이 되도 "나는 너라는 인간을 잘 안다"는 말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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