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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muan Aug 05. 2021

회사의 희망고문에서 벗어나는 법

아직 5개월이나 남았는데, '올해도 넌 안돼'라는 말을 들었다

 본부장 면담을 했다. 면담 결과는 예상보다 더 쓰라린 또 한 번의 ‘희망고문’이었다. 그래도 본부장님은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나와 한 시간 넘게 면담을 해주었다. 회사의 윗사람들이라면 ‘님’자를 붙이기도 아깝고 억울할 만큼 이가 갈리는, 꽃같은 인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기꺼이 본인의 귀한 시간을 내어주고, 몇 년 째 계속되는 희망고문에 멘탈이 털리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 고마우신 본부장‘님’이다.


 어느덧 직장생활 15년 차가 되었고, 나이는 마흔이 넘었고, 회사에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많아졌고, 몇 년 전부터 친구들과 동기들, 후배들이 하나둘씩 팀장을 달고 있다. 나는 과장을 달자마자 프로젝트 리더를 맡아서 했고, 미친듯이 성과를 냈지만, ‘관례적’으로 연차가 찬 선배들에게 업적을 양보했다. 당시 본부장은 ‘대가족론’을 꺼내들었다. ‘나이순대로 차례차례 팀장을 달아야 한다’ ‘언젠가는 너의 차례가 올 것이다’ 라고 했다. 더 기가 막힌 이론은 ‘사회적 약자론’이었는데, 하는 일은 하나도 없이 실적만 가로채는 윗사람이 너무 얄미워서 이건 좀 부당하다고 따졌더니 ‘쟤는 나이도 나랑 비슷한데, 가족이 아파’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해야지, 넌 너무 이기적이다’라고 했다. 당시 나는 임신 7개월째였고, 몇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쳐내느라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부당한 현실에 시달리다가 결국 공황장애가 왔고, 결국 회사에 오만정이 떨어져서 모든 걸 싹 다 정리하고 이민을 갔다. 하지만 이민생활은 쉽지 않았다. 이민생활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너무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으니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쨌든 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 후로 3년 동안, 내년에는 팀장을 시켜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영혼을 바쳐 회사에 충성했다. 하지만 첫해에는 복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음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실적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팀장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올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다들 1년씩 육아휴직을 해서 적응을 돕던데, 나는 입학식날 하루 휴가를 내는 것도 눈치를 봤다.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돌아가고 있어서 물리적으로 바쁘기도 했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거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결국, 휴가를 냈지만 오후에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 출근을 했고 야근을 했다.


 3년째 휴가도 마음대로 못 내고 있다. 프로젝트를 하라고 하면 단 한 번도 싫다고 한 적 없이 다 맡아서 했고, 그 놈의 빌어먹을 책임감 때문에 아이가 눈 앞에서 울면서 보채도, 모른 채 하고 다른 방으로 가서 업무 관련 통화를 했다. 한 달 내내 주말도 저녁도 없이 야근을 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기도 했다. 휴가를 가더라도 혹시라도 책잡힐까봐 혹은 놓치는 게 있을까봐 단 한 순간도 회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나의 1순위는 늘 아이들도, 나 자신도 아닌, 회사 일이었다.


 올해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더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버텨왔는데, 오늘 본부장님이 나를 불러서 한 말이 정말 허무했다. 너도 열심히 했고 일을 많이 했겠지만, 올해는 모두가 열심히 했고, 다들 일을 많이 했다. 상반기 너의 실적은 ‘제로’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가 한 몇 가지 일들은 (도중에 코로나 때문에 혹은 갑의 내부 사정으로 축소되거나 취소되었기 때문에) 포인트로 쌓이지 않았다. 또 몇 가지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한 일 대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전 내년에 또 이 희망고문을 버텨낼 자신이 없습니다. 올해 이 마음고생을 끝내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시키시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올해는 이미 늦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년에 한 번 더 기회를 보자’, 는 것이었다.


 너무 허무하고 속상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대신 숨이 턱 막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네가 운이 안 좋았던 것 같긴 하다만, 그 탓을 하지 말고 더 노력을 했어야지’ 

나는 왜 회사를 다니는 걸까. 누군가 물으면 돈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월급을 안 준다면 절대 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려가며 회사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몇 억에 달하는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남편 혼자 이 짐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회사이기 때문에 억지로 참으면서 버티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연차가 어리고, 나이가 어렸을 때 옮겼어야 하는데, 이 빌어먹을 네임밸류 때문에 멘탈이 다 나가도록 여기 이러고 있다가 이 꼴을 당했다. 


 올해가 아직 다섯 달이나 남았는데, 내가 더 노력을 해보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는데도 내년에 팀장을 달아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내후년까지 일단 기다려보라는 본부장님의 말에 한편으로는 너무나 솔직해서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슬펐다. 나는 그 동안 왜 그렇게 회사일에 목을 맨 걸까.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대충대충 했더라면, 차라리 정말 못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 결론이 난 것 같다. 이 꽃같은 회사에 내 미래는 없다. 이 회사는 나의 미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 회사는 내 청춘과 영혼을 다 갉아먹고, 이제와서 나를 뱉어내려고 하고 있다. 가장 스마트한 복수는 영혼을 빼고 딱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다니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다니는 ‘가성비’ 좋은 분들도 많다. 일찌감치 상처뿐인 경쟁에서 물러나, 투자를 공부하거나, 가족사업을 돕거나, 부캐를 키우거나,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그냥 좋은 아빠로, 엄마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만을 투자하며 가정생활과 본인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분들도 많다. 


 그 동안은 그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별 차이 없는 연봉을 받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나는 몇 년 동안 ‘나’와 ‘가족’을 희생했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게 없고, 그 분들은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은 채 더 많은 정서적 안정과, 소소한 행복들을 챙겼다. 나는 그동안 아무 것도 챙기지못했고 멘탈은 완전히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너무나 억울하다. 피해망상증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고,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내 사람들, 무엇보다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희생시켰다.


 분노와 좌절이 가득한 이 밤, 자식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대출금 때문에 당장 그만두지도 못하면서 다짜고짜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 글은 불공평과 불공정으로 가득한 회사에 대한 나의 소소한 복수이며, 내 무너진 자존감과 멘탈을 붙잡기 위한 도구이다. 딸이 집안일은 못해도 회사에서는 한 가닥 한다고 믿고, 온 맘으로 손녀들을 돌봐주시는 부모님께 차마 전하지 못하는 땡깡이며, 나중에 딸을 낳으면 꼭 너처럼 키우고 싶다던 동기 언니에게 보내는 미안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내 딸들에게 하루하루 대책 없이 열심히 살다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하물며 좋아하는 남자도 아닌 회사에 희망고문을 당하는 일은 부디 없기를 바라는 못난 어미의 간절한 바람이다.


라고 내 멘탈을 다스리기 위해 이 글을 써서 충동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는데, 오늘 승인이 났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지. 그리고 이번에는 병원에 가는 대신, 약을 먹는 대신, 이렇게 한 번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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