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2. - 2021. 7. 25.
서울 여행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서울의 이곳저곳을 검색하고 사진을 보니 한국이 그립다.
한국에서의 마음을 생각하면 참 간사하다.
처음 도착하고 한 달 정도는 날씨가 선선해서 수업 끝나고 한두 시간 해변이나 거리를 걷고 한국과 다른 풍경들을 감상하며 새로움에 취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4개월째인 지금은 한국의 산길과 거리가 더 생각난다.
금세 이런 마음일 거면서 휴직연장이니 MBA니 고민하던 게 어이없다.
휴직연장에 대해 문의했는데 감감무소식이던 담당자가 고맙다.
MBA는 내 관심분야가 아니라 힘들 것이라는 희의 말리던 말도,
그 말에 끄덕이며 얼른 포기한 나도 다행이다.
갈수록 무엇을 성취하느냐보다 뭘 포기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삶의 방향과 색깔이 달라질 것이다.
지난번 술병 난 이후로 라면, 짜장면, 치즈케이크 등 고칼로리 음식을 계속 먹어대면서 뜨거운 태양 아래 걷기도 못하고 집에서 유튜브로 30분 정도 따라 하던 벨리댄스도 안 하고 있다.
관성이 정말 중요하다.
한번 안 하면 조금 길들여 놓았던 습관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이곳에 온 다른 나라의 어린 학생들이 코로나에 걸려 자가 격리 상태이거나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기사와 카페 글을 보며 나는 그래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안도한다.
동면이 아닌 하면을 하고 있다.
막상 나가면 집안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상쾌한 기분이지만 선크림 바르는 것조차 귀찮다.
물과 먹을 것이 있으면 집에서 책 읽고 드라마 보고 영어뉴스 듣고 영어소설 몇 장 읽으면서 이 나이에 이 정도만 하면 됐지 뭐 하며 억지 여유를 가진다.
언제부터인가 나 늙는 건 생각 안 하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되뇐다.
조직생활을 안 하고 매달 월세를 받을 부동산을 가지고 산하가 성인이 되고 산수가 결혼을 하고.. 뭔가를 계속 기다리니까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어제의 집콕을 만회하느라 40분쯤 걸어서 발루타 베이를 지나 스피놀라 베이와 세인트 줄리안 쪽으로 왔다.
예전에 먹었던 이 근처 mood cafe의 치즈케이크가 생각나서 걷기, 일기 쓰기, 커피, 치즈케이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산책을 나섰다.
뜨거움이 지난 오후에 나갈 생각을 하면 또 게을러지니 아침 8시쯤 나와 카페 오픈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작은 곳인데 여러 종류의 치즈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판다.
오늘은 피스타치오 치즈케이크를 골랐다. 초록색이 올려진 치즈케이크다.
내가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한 맛을 음미했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선베이딩 하고 있는 사람들과 수영하다 요트 안으로 들어가 노는 사람들, 서핑 보드 위에 서서 노 저으며 고요한 물 위를 떠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사람들도 인생살이의 비슷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방인인 내가 볼 때는 오늘만 생각하는 것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