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한마디 안 했다가 2천억 원 손해를 입은 유나이티드 항공
오늘 아홉 시 뉴스에서도 어느 기업 총수가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매우 유감이다”, “사회에 무리를 일으킨 점 반성한다”라는 뻔한 표현들을 듣고 있으니 기업 총수들 사이에는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교과서라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직원의 일탈행위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낀다”라는 표현도 하겠지요? 여론이 더 악화되면 사회공헌기금의 출연과 경영권 가족 승계 포기도 아마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기업 총수의 사과를 보고 있으면 전 저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듭니다. 저 기업 총수야 티브이에 잠깐 나와서 사과문을 읽는 것이 다이겠지만, 직원들은 걸려오는 소비자들의 항의 전화에 얼마나 많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을까요. 잘못은 기업 총수가 했는데 사과는 직원들이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라는 속담을 패러디하고픈 마음이 듭니다. 2014년에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투척 사건 때에도 승객들에게 사과하느라 지친 승무원들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정작 사건의 원인인 조현아 부사장은 여론이 악화되자 부사장 직위에서 물러났었다가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칼 네트워크의 등기이사로 슬그머니 복귀를 했습니다. 이쯤 되면 직장인들의 월급에는 기업 총수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업의 진심 어린 사과는 기대하기 힘든 것일까요?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오히려 더욱 성장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8년 스타벅스는 미국 필라델피아 매장에서 일어난 흑인 고객에 대한 직원의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 하루 만에 CEO가 직접 나서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이 벌어졌다며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피해 흑인 고객을 만나 사과를 하고 미국 전역의 8000여 개 스타벅스 매장을 하루 동안 폐점한 채 전 직원들에게 인종차별 방지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접 피해자를 만나 사과를 하고 매출 손해를 감수하고 매장을 폐쇄했던 스타벅스의 노력은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좋은 인상을 남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반면 기업이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해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었던 사례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한마디 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있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08년 당시 유나이티드 항공은 미국 3대 항공사에 하나로 당시 승승장구하던 대표 항공사였는데요, 수화물이 파손된 고객에게 사과하는 것을 등한시했다가 나흘 만에 주가가 10% 이상 폭락하고 오만한 항공사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인식되어 버린 큰 과오의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마케팅에서는 고객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거론되는 사례이기도 한데요, 한번 알아볼까요?
2008년 3월 31일, 캐나다 출신의 컨추리 송 가수 데이브(Dave Carroll)는 네브래스카에서의 공연을 위해 시카고 공항에서 환승 중이었습니다. 근데 뒤에 앉은 승객이 밖에 수화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짐을 부주의하게 던지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기타 박스도 휙휙 던지다시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데이브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에 필요한 기타를 수화물에 부쳤거든요. 네브래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데이브는 자신의 수화물을 찾아 기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아뿔싸, 데이브는 자신의 비싼 기타가 부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기타가 부러져 있는 걸 본 데이브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신의 기타를 이렇게 부러뜨린 것도 화가 나지만, 데이브는 세 번이나 승무원들에게 자신의 기타를 조심해달라고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들은 척 만 척 아무 반응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단 공연이 급했던 데이브는 네브래스카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 공항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에 컴플레인을 하고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유나이티드는 기타를 부러진 것은 안타깝지만 보상해줄 책임은 없다고 했습니다. 24시간 이내에 보상을 요구해야 하는데 데이브는 그 시간을 넘겼다는 거죠. 이후 데이브는 콜센터에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보고 수차례 항의했지만 늘 같은 답변뿐이었습니다. 유나이티드는 이에 보상할 책임이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끈질긴 데이브는 무려 9개월 동안 끊임없이 유나이티드에 온갖 방법을 동원에서 항의했습니다. 끝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유나이티드에 대해 데이브는 자신이 겪은 이 황당한 사건을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비록 유명하지 않은 인디가수일 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공연을 통해 이 경험을 널리 알리겠다고 마음먹습니다
2009년 7월 6일, 사건이 있은지 15개월 만에 데이브는 자신의 노래를 뮤직 비디오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립니다. 노래 제목도 아주 직설적이었죠. "United Breaks Guitars"(유나이티드가 내 기타를 부러뜨렸어). 미국 중부 특유의 컨츄리 리듬에 데이브는 자신의 분노를 흥겹게 노래에 녹여내었습니다.
Some big help you are
너에게 충고 하나 할게
You broke it, You should fix it
네가 부쉈으면 네가 고쳐야지
You're liable, just admit it
너네 책임인 거 너네가 인정해야지
I should've flown with someone else or gone by car
다른 항공사 비행기를 타던가 차를 타고 갈걸 그랬어
Cause United breaks guitars
왜냐면 유나이티드 항공은 기타를 부숴버리거든
데이브가 이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자 조회수가 순식간에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이 비디오를 본 사람이 15만 명을 돌파합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50만 명, 한 달 만에 500만 명이 비디오를 보게 됩니다. 심지어 노래에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노래의 후렴구인 “유나이티드~ 유나이티드~ 넌 내 기타를 부숴버렸어~”를 흥얼거리게 됐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회사가 자신의 브랜드를 500만 명에게 노출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요? 만약 유나이티드 항공이 TV광고를 통해 500만 명에게 유나이티드라는 브랜드를 인식시키려면 아마 어마어마한 금액의 광고비를 쏟아부어야 가능할까 말까 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나이티드 항공이 승객의 수화물을 던져서 파손시켰다는 4분짜리 뮤직비디오를 오백만 명이 보고 거기에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닌다는 것은, 유나이티드 항공의 수십 년 매출에 해당하는 금액의 손해에 비교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역시나 그 영향은 주식시장에서 바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에 뮤직비디오가 올라온 지 나흘 만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주가는 10% 이상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2억 달러에 해당하는 회사가치가 증발해버린 것이지요. 3000불짜리 기타를 배상해주지 않고 버티던 유나이티드는 기타 5만 개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무형의 브랜드 가치까지 생각하면 그 손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유나이티드 항공. 결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데이브에게 사과하고 기타 값에 해당하는 3000불을 데이브의 요청에 따라 비영리 음악 교육기관에 기부합니다. 그리고 데이브가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자사의 내부 교육용 비디오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데이브에게 요청했다고 하네요. 유나이티드는 심지어 데이브를 자사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 서비스 교육의 강연자로 초청합니다. 물론 강연료는 두둑이 지불했겠죠? 미국 전역의 유나이티드 지사에 데이브를 1등석 좌석에 모시고 가서 자신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도록 합니다 (근데 강연하러 가는 데이브의 수화물을 유나이티드가 잃어버리는 어이없는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죠. 심지어 기업도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글로벌 기업도 고객에게 실수를 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고객에게 한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객의 수화물을 파손하는 실수는 유나이티드 항공뿐만 아니라 그 어느 항공사도 빈번하게 하는 실수이지만, 그 실수에 대해 고객에게 어떻게 사과하고 처리하느냐가 유나이티드 항공 사례에서와 같이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이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만 해당하는 진리가 아니라 기업과 고객 사이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사과의 진심은 기업의 대표자인 최고경영자가 얼마나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일반 직원들의 뒤에 숨어서 우아하게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사과를 다하려는 행태는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우리 직장인들의 월급에는 당신들의 사과를 대신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