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이 미국인에게 남긴 교훈
오늘도 회사 휴게실은 각종 가십거리를 수군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총무과 김대리와 박 과장의 비밀스러운 사내연애는 당사자들 생각과는 달리 더 이상 비밀이 아닌 듯하네요. 건물 뒤편 흡연공간에서는 신입사원이 몰고 온 비싼 외제차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그 신입사원이 회사 주요 거래처 오너의 둘째 아들이라는 가설이 꽤나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어젯저녁 영업지원팀 회식자리에서 벌어진 곽 부장님의 주사는 타닥타닥 거친 키보드 소리만큼 회사 메신저에서 뜨거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참으로 남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작은 책상 위 공간에서 하루 종일 여덟 시간 넘게 갇혀 있어서 그런 걸까요? 주변에서 벌어지는 남들의 사사로운 이야기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평가하고 비난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내 불륜 이야기는 그 어느 주제보다 큰 관심과 비난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불륜의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입방아 속에서 몇 번이나 처형당합니다. 이들은 같이 일하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사람들로 매도되곤 합니다. 특히 직장상사가 그 불륜의 당사자인 경우 그런 도덕성을 갖춘 사람 밑에서 더더욱 같이 일할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만약 당신의 직장상사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면, 당신은 그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이 불편하신가요? 아니면 그 사람의 개인사일 뿐 같이 일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으신가요?
직장상사의 불륜에 대해서만 해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데; 만약 한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의 불륜이라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리인 만큼 대통령의 불륜사건은 더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게 될 것 같아요. 실제로 대통령의 불륜으로 인해 국민들이 한동안 충격과 분노로 휩싸였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42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그 주인공입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라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지만, 1998년 겨울,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불륜사건으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백악관의 주인이자 42대 미합중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사원인 모니카 르윈스키 (Monica Lewinsky)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는 폭로였습니다.
이 폭로의 시작은 대학 졸업 후 백악관 인턴으로 취업한 모니카 르윈스키가 자신의 동료인 린다(Linda Tripp)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클린턴 대통령과 연인관계이며 백악관에서 여러 차례 그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의 예산안 합의가 실패해서 정부기관이 일시 폐쇄되었던 1995년 11월 15일, 백악관 또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하고 대통령과 일부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백악관이 한적한 그날 밤, 혼자 남아있던 클린턴 대통령에게 르윈스키는 대통령의 집무실을 보고 싶다고 했고, 평소 르윈스키에게 호감이 있던 클린턴 대통령은 그녀를 집무실로 안내합니다.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키스를 하고 그날을 시작으로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와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시작되었습니다
르윈스키의 충격적인 고백을 접한 린다는 르윈스키에게 클린턴과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을 버리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클린턴이 르윈스키에게 준 선물들을 잘 챙겨놓고 특히, 클린턴의 정액이 묻어있는 르윈스키의 파란 드레스를 세탁하지 말고 갖고 있으라고 조언합니다. 린다의 예상대로 이 파란 드레스는 이후에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한편 린다는 르윈스키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듯하면서도 은밀히 자신만의 증거를 만듭니다. 자신과 르윈스키의 전화통화를 몰래 녹음해서, 르윈스키가 클린턴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내용을 증거로 남겨 놓습니다.
한편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전 알칸사주 주지사로 재직 당시에 있었던 성희롱 사건으로 골치를 썩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정부 직원이었던 폴라(Paula Jones)는 클린턴 당시 주지사가 자신을 호텔에서 성추행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클린턴은 이 소송이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중단되도록 법원에 호소했지만, 대법원에서는 대통령 재임기간이더라도 재판이 계속되도록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법원으로 불려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폴라가 제기한 성추행 소송. 이 소송은 이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클린턴의 성추행을 입증하려던 폴라의 변호사는 클린턴의 여성편력을 법정에서 드러내서 재판에서 승리하려는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는 클린턴과의 관계가 의심이 가는 주변 여성들을 증인으로 법정으로 소한해서 클린턴과의 관계를 캐묻게 됩니다. 그때 소환된 여성중 한 명이 바로 르윈스키입니다. 르윈스키는 이미 백악관에서 클린턴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어 두 사람의 관계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법원에 증인으로 소환당한 르윈스키. 그녀는 클린턴과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소환된 그녀의 동료 린다에게도 자신이 한 이야기를 잊고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르윈스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린다는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위증죄 처벌을 받게 될까 봐 르윈스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몰래 녹음한 르윈스키의 전화통화 내용을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Kenneth Starr)에게 전달합니다. 이렇게 르윈스키가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8년 1월 17일, Drudge Report의 보도를 시작으로 Washington Post 등 미국 메이저 언론들이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케네스 특별검사는 전달받은 녹음테이프를 무기로 클린턴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린턴의 부동산 투자 및 횡령 등에 대해 수사하고 있었던 케테스 특별검사는 자신의 조사범위를 르윈스키와의 관계까지 확대하여 클린턴을 궁지로 몰기 시작했습니다. 케네스 검사가 클린턴을 가장 궁지로 몰았던 것은 바로 클린턴의 위증죄(perjury) 혐의였습니다. 클린턴은 폴라의 성추행 소송에 증인으로 소환되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여부를 강하게 부인했었습니다. 만약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진 것이 사실이라면, 클린턴은 법정에서 위증을 한 것으로 이는 탄핵(impeachment) 사유에도 해당하는 큰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1998년 1월 26일,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전국에 생중계되는 TV 앞에서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정합니다.
"I did not have sexual relationship with that woman, Miss Lewinsky"
클린턴이 이렇게 자신 있게 전 국민 앞에서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정하게 된 것은, 둘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르윈스키가 전화상으로 클린턴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녹음테이프가 있었지만, 그것은 전화통화 일뿐, 르윈스키가 입을 열지 않는 한 둘 사이의 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벽에 부딪힌 케네스 검사. 그는 르윈스키를 협박했습니다. 만약 둘 사이의 관계가 입증되면, 법원에서 둘의 관계를 부인했던 르윈스키는 위증죄로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이라도 둘 사이의 관계를 밝힌다면, 위증죄는 사면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르윈스키를 회유합니다. 결국, 겁에 질린 르윈스키는 케네스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클린턴의 정액이 묻어있는 파란 드레스를 그에게 넘깁니다
1998년 8월 17일, TV 앞에서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정했던 클린턴은 그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TV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전 국민 앞에서 고백합니다. 자신의 정액이 묻은 르윈스키의 드레스 앞에서 클린턴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르윈스키와 "Improper physical relationship"이 있었음을 연방 대배심원들에게 이야기하고, TV 앞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클린턴의 자백을 받아낸 케네스 특별 검사는 자신의 수사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서 미연방하원에 전달합니다. 445 페이지에 이르는 이 보고서에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세세한 대화 내용부터 그들의 성관계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되어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인터넷으로 전부 공개되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이를 퍼 나르듯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인이 미국 검사가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자신보다 20살 어린 인턴사원과 어떤 자세로 무슨 대화를 하며 성관계를 가졌는지를 알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1998년 10월 5일,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케네스 검사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의 사유가 될 만한 두 가지 중대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탄핵안을 발의했습니다. 그 두 가지 중대 범죄는 (1) 사법방해(Crime of obstruction of justice)와 위증(Crime of perjury)였습니다. 이로 인해 빌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클린턴의 탄핵여부는 미 상원(Senate)에서 표결로 결정 나게 되었습니다. 100명의 상원위원으로 구성된 미 상원은 21일간 그의 혐의를 심의하고 최종 투표를 통해 클린턴의 탄핵여부를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 상원은 55명의 공화당과 45명의 민주당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클린턴의 탄핵은 전체 위원의 2/3인 67명이 찬성하면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1999년 2월 12일, 운명의 탄핵 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최종 투표 결과 클린턴의 첫 번째 탄핵사유인 사법방해에 대해서는 찬성 50표, 반대 50표로 부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탄핵사유인 위증죄에 대해서도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부결되었습니다. 공화당원들 가운데서도 클린턴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는 표가 10표 이상 나오면서,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두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탄핵은 최종적으로 부결되었습니다
백악관 집무실 복도에서 시작된 이 스캔들은 클린턴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재판을 받은 대통령으로 기록하며 끝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생각은 계속되었습니다. 도대체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의 심판대까지 올라야 했던 그의 범죄가 무엇이었을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왜 미국은 지난 1년간 클린턴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느냐에 대한 반성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가 언론에 폭로된 이후 탄핵투표가 이루어진 1년 동안,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졌는지에 대한 여부였습니다.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둘 사이에 대한 추측에 기반한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놓았고, 정치권에서는 클린턴의 여성편력에 대해 국회에서 매일같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케네스 검사의 보고서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케네스 검사는 보고서 완성 이전에도 수사 내용을 언론에 조금씩 흘렸고, 언론은 이를 특종처럼 보도하며 국민들의 관심을 클린턴의 사생활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이 혼외정사를 했다는 사실이 과연 대통령직을 박탈당할 만큼의 잘못인가에 대해 미국인들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도덕적으로 가족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10차례의 성관계 중 6회는 힐러리 영부인이 백악관에 있을 때였다는 사실은 클린턴을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시민들은 이것은 클린턴의 사생활일 뿐, 그리고 클린턴과 힐러리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탄핵심의를 앞두고 있었던 USA투데이와 CNN의 합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은 65%로 탄핵을 찬성하는 여론의 34%를 압도했습니다.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왜 미국은 지난 1년간 클린턴의 사생활에 이토록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요? 결국 탄핵의 사유가 되었던 것은 그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지 그가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언론들은 그의 사생활을 낱낱이 보도하며 클린턴을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도덕적 실패자로 묘사하였습니다. 결국 사생활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를 하며 국민들을 자극시켜온 언론이 지난 1년의 미국 사회를 R등급의 포르노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웃지 못할 일은 클린턴의 지지자이자 성인잡지 허슬러(Huslter)의 잡지 발행인 래리 플린트(Larry Flynt)는 이 사태에 분노하여 클린턴을 탄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과거 섹스스캔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미국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습니다. 실제로 래리의 폭로 협박으로 인해 공화당 국회의원 여러 명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 사생활을 자백하며 사과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이제 제가 처음 드렸던 질문으로 돌아가 저의 답을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제 상사가 불륜을 저질렀든 천하의 바람둥이든 함께 일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상사를 평가함에 있어 저에게 중요한 것들은 상사가 업무에 충실한 사람인지, 제가 업무면에서 배울만한 사람인지, 저의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할 사람인지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생활을 갖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그 사람의 사생활을 가지고 그 사람을 회사 안에서 평가하는 것이야 말로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는 범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사생활이 공적인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이를 모두 사생활의 영역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건 같은 경우입니다. 당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녀의 사생활에 관련된 일이더러도 명백히 밝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내려왔던 정치, 외교, 사회, 문화 각 영역의 주요 결정들이 정말로 대통령의 지인의 영향에 의해 내려졌었는지, 외부인들이 국가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해왔었는지, 대통령 본인과 외부인들이 국가기관의 주요 인사에 개입하고 특정 정치성향의 인물들을 통해 민간기업과 시민사회를 장악하려고 했었는지, 그리고 심지어 안보와 직결된 국방, 무기 구입에 대한 로비와 이권개입이 있었는지 등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밝혀내는 데 있어 대통령의 사생활을 들쳐보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생활이 아닙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7시간 동안 국가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결정을 하고 지시를 내렸는지는 사생활이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티브이를 봤던 보톡스를 맞았던 마늘 두사를 맞았던, 그 7시간이야 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엄격하고 엄숙하게 밝혀내고 되돌아봐야 할 공적인 영역이었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의 생각이 대답이 궁금합니다. 당신은 불륜을 저지른 상사와 함께 일할수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