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꿈은 떡볶이집 사장님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진정 날마다 공짜로 원 없이 떡볶이를 먹고 싶었다. 하굣길, 강렬했던 떡볶이 냄새는 진한 어묵 육수를 타고 1미터 전부터 내 코끝을 자극했다. 주머니 속 빈손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매의 눈으로 땅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1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하면 그날은 운수대통이다. 못 보고 지나치는 불상사는 없어야 했다. 땅 위에 모든 것이 매직아이로 보였다. 그날은 허탕이었다. 잔뜩 힘준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떡볶이집을 쳐다보았다. 내 마음은 불 위에 소스처럼 자글자글 탔다.
우리 반에는 떡볶이집 사장 딸이 있었다. 그녀는 세상을 다 가졌다. 나를 포함해 아이들은 그녀를 부러워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를 삼시세끼 먹을 수 있는 그 아이가 바로 금수저였다. 반면 나와 친구들은 흙수저였다. 동전을 탈탈 털어 모은 돈으로 천 원어치 떡볶이를 주문했다. 포크 3개가 2배 빠른 속도로 입과 접시를 오갔다. 눈치싸움은 기싸움으로 변했다. 백 원 더 낸 아이가 마지막 떡을 먹는 영광을 차지했다. 다행히 마지막은 공평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자는 떡볶이 국물을 혀로 핥아 본전을 뽑았다. 반면 사장님 딸은 여유로웠다. 느긋하게 앉아서 떡 하나를 남겼다. 호사로운 가시나. 치! 배가 불렀나 보다. 부러움 반, 질투심 반. 우리의 시선이 삐딱했다. 저 아이가 일어나면 바로 일어나 집어 먹을 기세면서.
학창 시절 단 하루도 떡볶이를 먹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학교가 바뀌면서 단골 떡볶이집도 그때그때 달랐다. 매콤한 떡볶이, 달달한 떡볶이, 걸쭉한 떡볶이 등 특색도 제각각이었다. 떡볶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음식은 어쩜 그렇게 다 맛있을까? 입안에서 찰진 떡의 끈적거림이 좋았다. 입술에 닿는 감촉은 매끄럽다. 입을 한껏 오므려 힘주어 말랑한 떡을 쏘옥 끌어당겼다. 먹는 재미는 덤이었다. 마지막 물 한잔은 1%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위에서 중화작용이 일어나 이내 편안해졌다. 떡볶이 한 접시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신기하게도 떡볶이집 사장님들의 친절했고 미소는 한결같았다. 사장님의 자줏빛 소쿠리는 현금으로 두둑했다. 분식점 앞은 학생들로 항상 붐볐다. 북적북적한 떡볶이집은 시장 한복판을 연상케 했다. "이모, 3인분!" 말이 짧았다. 우리 사이 친하다는 증거였다. 이모는 단골에게 떡 하나 더 넣어주었다. 소스 한 국자 아낌없이 가득 퍼주었다. 이모의 인심이었다. 천 원 이상의 포만감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같은 이모를 가진 떡볶이 메이트다. 그 시절 떡볶이가 맺어준 우정은 달달하고 맵싹 했다. 용돈이 없었던 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신세 졌다. 단 한 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내 배는 든든했다. 마음은 더없이 행복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떡볶이 메이트는 인생 메이트가 되었다. 1일 1 떡볶이 시절,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을 성인이 되어서 밥값으로 대신한다. 평생 갚아도 부족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