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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Jun 14. 2021

가정의 평화, 맛있는 밥상

감각의 일기 <0> - 베타 테스트 中

1.

오늘은 헬요일...취재요청협조 메일작성과 뉴미디어런칭을 위한 작명회의(내 아이디어 채택됌 ㄷㄷ) 그리고 졸라리 긴 리포트성 기사 요약작업에 나섰다. 얼추 다 마치니 벌써 퇴근시간...

이지만 나는 아직 집에 가지 않는다.


다들 칼퇴하셨지만, 마지막까지 사무실에 좀 더 남아본다!

.

.

Why?


밥먹고 갈거니까~ㅎㅋㅎㅋ

2.

내 생각에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최강의 복지는 맥북지원도 아니요 야근시 교통비지원도 아니요 오직 맛있는 구내식당의 존재다. 우리나라 급식 브랜드 중에 탑클래스로 손꼽히는 LG계열사의 아워홈에서 삼시세끼를 제공해주시는데...이게 대학교 학식보다 가격이 싸버리면 밥사먹는 나도 안심이고...내가 밥을 먹었대도 끼니걱정을 아끼지 않는 모친께서도 기뻐서 눈물을 흘려버리시는 거여~(사실 엄마는 울지 않았음) 밥 먹기 싫으면 다른 거 먹으라고 간편식이나 샐러드도 같은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내가 요즘 먹성이 너무 좋아서 그르티 다이어트에 나서면 식단 조절도 너무 저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식당에서 파는 햄치즈 빠니니를 우걱우걱 씹으며 쓰고 있다.


3.

삼시세끼를 꽤나 좋은 퀄리티에, 심지어 저렴한 가격에 해결하고 있다. 이 사실에 가장 기뻐하는 건 저기 간석동 집에 계신 울엄마 희옥씨다. 대체로 자유분방한 희옥씨가 종교적 실천에 나서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식구들 식사챙기기'다. 늦게오는 사람 밥 안챙겨도 된다고...그건 늦게오는 사람 잘못이라고 천번 만번은 말한 거 같은데 희옥씨는 언제나 해질 무렵 전화를 건다.


"밥 먹고 들어오니?"


아아...희옥씨의 눈과 입을 쏙 빼닮은 그남자는 너무 밥을 잘 먹고 다녀서 문제라구요...ㅠ


...

사실 밥 먹었는데도 집에 도착하면 밥 안먹었다고 구라친 적도 있다.


4.

희옥씨는 그렇다고 밥을 대충차리지도 않는다. 희옥씨의 정성은 일본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화보마냥 상차림에 온갖 미적 기교를 다해 차리는 정성은 아니다. 영양학적으로 훌륭하고, 한끼를 먹으면 하루 온종일 기운이 나는 맛을 추구한다. 식탁에 앉은 사람이 대체로 "맛있다."고 느낄 때. 요리의 맛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줄 때 희옥씨는 진심으로 기뻐한다. 희옥씨는 우리집에서 너튜브를 제일 똑똑하게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의 플레이리스트는 트로트프로그램/ 요리채널 양강구도를 펼치고 있는데, 요즘 어디서 자꾸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는 모양이다. 원래 맛있었던 희옥씨의 밥상이 더더욱 맛있어졌다.

5.

요즘 희옥씨는 날이 더워서 펄펄 끓는 국물요리는 못하겠다고 차가운 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오이냉국...오이무침처럼 재료의 찬 성질을 이용한 요리부터 잘 삶은 소면을 장에 비벼 가볍게 먹기 좋은 볶음국수까지 해낸다. 우리집 면요리 담당은 나였는데 이제 내가 레시피를 전수받아야 할 타이밍인가보다.


특히 희옥씨가 내 전용 식재료였던 중국요리까지 손을 뻗기시작했다. 엊그제는 장윤정이 집에서 해먹는 요리를 보여줬다며(TMI: 희옥씨의 최애는 언제나 장윤정이었다) 돼지고기 숙주볶음을 시도했는데, 예전에 차이나타운에서 사온 고추기름을 방송에서 본 양념장 레시피에 추가시킨 것이다. 희옥씨가 양념장을 버무리고 있을 때, 좀처럼 열이 뻗지 않는 인덕션의 화력에 투덜대며 돼지고기를 마늘과 할라피뇨를 넣고 열심히 볶는 나. 마라탕집에서 날법한 매콤한 향이 주방 가득 퍼진다. 우리 집에 좀처럼 없던 요리냄새였다.

그렇게 탄생한 중국식 돼지고기 숙주볶음은 채수가 고기에 알맞게 배어들며 ㄹㅇ 밖에서 돈주고 사먹는 그런 맛이 나버리는지라...나는 정말 밥먹는 내내 호들갑을 떨고 말았던 것이여요 ㅠㅜ...


희옥씨는 빵끗빵끗 흐뭇해한다. "너 밖에서 이렇게 밥 잘챙겨먹고 다니면 내가 주말에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미소지으며 내게 말했다.


부모자식 나이가 20년 이상 벌어지기 시작하면, 매일매일 밥먹는 건 너무 징그럽고... 딱 주말에만 서로 애틋한 게 좋지 않나 싶다.

6.

직장인 라이프 3년차. 최우선 목표로 독립을 꿈꾸는 내게, 종로구or용산구 전입신고를 간절히 희망하는 내게 고향집은 이제 떠나야 할 둥지다.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가 한가득이여서...한지붕에 목소리가 둘 이상은 되어야 사람 사는 의미가 생긴다고 믿어서... 조금 더 고향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모처럼 잡게된 제대로 된 직장이 가정 내 평화는 물론 개인의 감각향상에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내가 가정의 평화, 맛있는 밥상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기도 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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