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의 '시와 산책'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시몬 베유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한정원, 『시와 산책』 34p
1.
요즘 어른이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한 건, 행복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물어볼 때 뿐이지 않을까 싶다."넌 행복이 뭐라 생각해?" 질문을 요즘 들어 많이 주고 받는 거 같다. 행복이 뭐냐고 묻는 건 대부분 어른들인데, 대부분 먹고 살만한 것을 정교하게 짜야하는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행복을 많이 묻는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일까. 확실히 모던타임즈의 개인은 행복이 중요하다.
좋은 질문을 받으면 내면에서 오래 멈춰 세우는 편이다. 내게 머무른 만큼의 견해를 상대에게 전해준다.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인 소득과 제법 구체적이게 된 라이프 스타일로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어른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응답한다.
행복은 소유로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과가 진행 중인 물리적 시간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데서 행복이 탄생한다고...내게 적합한 상태를 안정적이면서 지속가능하게 리드할 수 있다면 행복을 꾸준히 끌고 갈 수 있다고... 그런 견해를 밝혔다.
이 견해의 결정적인 단서를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에서 얻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오늘 일 마치고 서재 뒤켠을 더듬거려 정확한 문장을 다시 찾아내 곱씹어봤다. 역시 맞군요.
한정원 작가의 산문집 '시와 산책'은 '시' '산책' 두 단어를 소중히 모시는 이에게 멋진 감흥을 주는 책이다.
2.
행복을 상태에서 찾으면 행복의 다양한 양식을 조금 더 유연하게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당신에게 행복은 뭐죠? 소유인가요? 아니면 관계인가요? 명사인가요 혹은 동사인가요?
무언가에 대해 진술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대변해줍니다. 예시를 능숙하게 만들거나 정교한 명제를 엮어 논리를 짤 수 있을 정도면 그 견해는 견해를 가진 사람을 정직하게 대변해주죠. 행복을 상태에서 찾는 사람을 더 가까이 만나 깊게 사귀는데 최선을 다하는 요즈음입니다. 이 미친 세상에~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매 순간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방향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다른다. 그 둘은 처음에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행복은 선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가가 바로 망각이기를 바란다. 그 낱말은 죽은 조상에게 맡기고 그만 잊자고. 할 수 있다면 '불행'도 잊자고.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
한정원, 『시와 산책』 34-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