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랑에 차오를 만을 쓰던가...
1.
지금 시각 오후 4시반, 정밀아 상륙작전에 실패했다. 살면서 이렇게 공연 열심히 쫓아다니고픈 뮤지션은 처음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고향에서 그것도 사운드를 신경쓴 공연을 펼치시는데 정말정말 많이 궁금했고, 또 듣고 싶었던 공연이다.
코시국의 공연장은 티케팅이 치열한 법이라, 나는 이번 공연 예매를 놓쳤다. 요즘 들어 안된 건 그냥 그대로 두는 편인데, 모처럼 낭만을 부려(?)보기로 한다.
공연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해서 혹시 모를 취소좌석을 문의하러 일부러 공연장에 나서보는 것이다. 공칠 확률이 90%이상이지만, 한번 기대를 걸어본 것이다.
낭만주의는 근대적 개인의 감성과 감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사조로 기억하는데...합리적 이성주의가 터치하지 못하는 현장에서의 변수, 돌발적인 상황전개에 몸을 맡겨보는 것인데, 역시나 실패했다.
세상에는 나만큼 정밀아님의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고, 코로나시대의 공연장은 원칙에 입각한 안내가 강화됐다.
2.
허나 이럴 때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게 낭만주의자의 미덕이겠다. 이 단상은 발걸음을 십분 정도 두두다다 옮겨 인천역 첫차 끄트머리에 앉아 쓰는 건데, 나는 지금 영등포역 즈음 내려 한강에서 자전거를 두세시간쯤 타기로 결심했다.
뭐 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자라에서 동생이 시킨 의류픽업을 할 수도 있고, 가방에 넣어둔 이소호 시인 산문집을 펼쳐볼 수도 있고, 무인양품에 가서 새로나온 무지라보 신상품을 입어볼수도 있다. 배가고파지만 츠케멘을 먹으러 갈 수도 있고, 재료소진이 뜨면 안가본 식당에 가볼 수도 있겠지.
누가 옆에 같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다. 오늘 신도림 흐앤엠에 가면 유진이가 있으려나? 어쩌면 이 뻘생각을 읽는 너님을 보러갈 수도 있다. 오늘의 나는 자유다.
3.
평일에 회사일에만 집중하면, 토일이 남지요. 그 중 하루는 무조건 쉬어두는 편이다. 에너지의 방향을 바깥이 아닌 내면으로 돌리는 액티비티에 집중합니다. 그건 집에서 식구들이랑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기도 하고...빈백에 엉덩이와 등짝을 푹 밀어넣어 눈을 감고 쉬는 것이기도 하고...점점 선선해져 가는 여름밤을 산책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3.
나머지 하루는 오늘처럼 낭만을 오픈합니다. 에너지의 방향을 바깥으로 쓰는 거죠. 그러면 소나기 구름 사이로 잠시 내리 쬈던 오후의 맑은 햇살이 전철의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걸 바라보기도 하고, 이 에너지를 같이 키워나갈 친구를 만나 우리에게 이롭고 선한 감흥을 찾아 어딘가를 고요히 떠도는 것이겠죠.
4.
뭐 그러니까 낭만이란 것은 내버려두면 때가 금방끼는 인덕션 화구같은 거여서 자주 살펴 깨끗이 닦아줘야 합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세상이 팍팍해져서 그런지, 낭만에 점수를 야박하게 주는 편입니다. 감성에 기반한 판단보다는 가성비,합리만 따지게끔 만드는 구석이 있어서...낭만은 챙기는 사람이 챙긴만큼 가져가는 마음상태가 됐지않나...뭐 그런 생각을 자주합니다.
5.
한달에 원화로 200만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생산시키는 사람이 된 이후로 낭만을 될 수 있는대로 소중하게 다루려 합니다. 낭만이 뜻을 풀면 파도 랑, 차오를 만 이었던 거 같은데... 돈 버는 일 때문에 마음이 꼬이면, 나중에 내면에 파도가 밀려와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감정이 차올라도 제대로 느낄 수 없어져요. 제대로 진단할 수도 없구요. 그러면 뭐 요즘 말로 꼰대가 되는 거겠죠.
경제력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발휘하는 낭만, 이런 의도된 낭만은 다다익선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