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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필년 May 15. 2022

나도 이제 더 이상 사랑이 두렵지 않아

어느 봄날의 단상들

연애나 결혼 같은 거 내 인생에 없을 거라 말했던 대학시절 친구, 서울에서의 모든 기반을 벗어던지고 밀라노로 넘어간 친구가 갑자기 작년 여름 선물처럼 회사 앞 광장에 나타났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무더위를 뚫고, 어렵게 쪼개서 낸 귀국 스케줄이었다. 그는 나와 점심을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짝꿍이랑 살아보니까 말이야. 좋을 땐 정말 좋고, 나쁠 땐 참 나빠. 근데 있잖아. 점점 두사람만 있을 때 서로 아이같아져. 이건 우리가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거지 서로. 응석도 부리고 때도 쓴다는 거야. 근데 한편으로는 덕분에 약점이 드러나. 개인의 나약하고 고약한 부분이 드러나는 거야. 심지어 나는 특히 외국에서 결혼생활하고 있잖아. 짝꿍이나 나나 서로가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지만, 나는 친구가 짝꿍밖에 없어. 그래서인지 짝꿍의 취약한 부분이 더 잘 보여. 혼내기도 하고 얼굴 붉히는 일도 많지. 나도 흉이 많이 드러나. 언어가 다르니까 몸짓을 많이쓰게 되고 그러면 숨을 곳이 없어져.


그런데 아이같은 모습을 서로 안고 쥐고 뒹굴고 하니까 사이가 더 좋아지는 거 같아. 나도 짝꿍네 커뮤니티 안으로 더 파고 들어갈 용기도 힘도 생겨.


너도 분명 만날거야. 그럴 만한 사람에게 그렇게 하게 될거야. 그냥..사실 부모나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건 그리 똑똑한 일은 아니지만, 취약함을 터놓고 뭉치고 으깬 다음에 막 합쳐. 그러면 강해진다? 그게 내 생각에는 다 큰 사람들이 굳이 사랑을 하는 이유야."



나 자신을 부지런히 설명했을 때 얻어지는 애정이 있다. 취향,방향성,전문성 이 세가지가 대체로 비슷한 결로 나란히 포개지면 그럭저럭 관계는 깊어져간다. 운이 좋고 서로 뜻이 많으면, 때때로 그들은 연인이 되기도 하는데... 꽤 오랜 세월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게 곧 최상의 애정이라 믿고 살았다.


그런 애정에 목을 매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였나. 볕이 적절히 따숩던 어느 계절, 집에서 아주 먼 곳으로 떠난 어느 여행지에서 동행자와 휘뚜루 돌아다녔던 하루는 정말이지 완벽하다고 느꼈는데, 한편으론 눈물이 났던 날이었다. "오늘이 우리의 절정이겠구나. 이번 여행같은 건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는 직관이 퍼뜩 서버렸다. 돌아오는 내내 몹시 헛헛하고 서러웠다. 우리의 만남에는 결정적인 게 빠져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그 많은 만남동안 한번도 손을 잡지 않고 돌아다녔구나. 너나 나나 입을 맞출 생각 같은 건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겠구나.


나 자신을 아무리 부지런히 설명해도 얻을 수 없는 애정이 있다. 그것은 직관적이며 본능적이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것이다. 이것을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 존중'이라 해두자.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추앙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이 세상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 딱 한사람. '온전히' 존중(추앙)을 교환하며 지낼 짝꿍이 한명은 나타나지 않을까. 이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단 한번도 사랑을 똑바로 해본 적이 없다.


팔뚝에 드리운 뭉근한 온기. 새근새근 잠들다 살짝 깨어난 이의 심장맥박과 호흡. 침대 위에서 인기척을 느낀 순간 마주한 얼굴과 그 표정 거기에 보탠 입맞춤, 분기점. 영원하고도 확실한 생의 분기점.


프리지아 꽃다발. 검은 비닐에 빡빡한 질감의 갈색 노끈으로 적당히 휘감은 꽃다발이었다. 프리지아 꽃다발을 만났다. 본디 내 것이 아니었으며 내것으로 여길 생각도 안했지만, 꽃다발을 보고 드는 생각은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좋았다. 꽃다발을 보면 냉큼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 굳이 싸매다 전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좋은 것만 모아 따로 품에 안겨주고픈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군요.


당신은 방 안에 정갈하게 꽃은 화병사진과 노래로 화답했다. 제가 일평생 "마음 울적 한날엔 거리를 걸어보고~"까지만 들어본 사람인데요. 당신 덕에 "프리지아 꽃 향기를 내게 안겨줄 그런 연인을 만나 봤으면" 까지 듣게 됐습니다.


저는 당신이 앞머리를 2센치쯤 짧게 잘라도, 바뀐 처피뱅을 못알아보는 멍청이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눈여겨본 신발은 기억이 또 선명하게 나버리는 사람이네요. 둔해 터졌네요. 그대 드리려던 프리지아 꽃은 잠시 내려두고, 신발가게에서 그대 찾던 신발을 찍어서 전해드립니다.


열심히는 기본이고, 잘 해보기도 할게요. 나는 사랑같은 거 하려면 모자란 게 너무 많은 사람야. 하지만

그런 당신 덕에 나도 더 이상 사랑이 두렵지 않아라고 적어본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고 물을 수 있기에 내일을 산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갈 이유를 만든다. 그냥 그 뿐이다. 사람은 혼자살기 적합한 유기체는 아닌 거 같고, 특히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한국 대도시에서 더 잘 먹고 잘 살려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계'가 꼭 필요한 거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가족이 아닌 존재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게다.


주중 하루는 꼭 집 근처에 머무른다. 참으로 복잡했던 한 주를 잊고 집에서 안녕을 꾀한다.. 나이먹을 수록 좋은 짝꿍이 되어가고 있는 동생과 비슷한 고민을 포개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스스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참으로 다른 이와 함께 살며 드러나는 게 아닐지.


나만의 집(공간)을 가지는 것. 그 집으로 가면 환대하는 마음으로 재잘거릴 사람이 있고, 우리가 그 곳에 더 오래 머물게 끔 만드는 것. 마흔까지 집요하게 추구할 세가지 목표가 됐다. 굳이 마흔까지 숨을 쉬고 살아야할 있다면 오직 그것 뿐이겠다. 그 뿐이다.


"똑바로 서 얼른!"


짝다리 짚고 서있을 때마다 냅다 종아리를 걷어차는 분이 곁에 있었죠. 자세가 왜이리 좋지 못하냐고, 몸을 올바르게 다잡고 살아야 건강하다고, 우리 같이 건강해지자고 손 꼭 잡고 다독여주던 분이 계셨어요. 똑바로 걷고 있는지, 체중을 알맞게 몸에 분배하고 있는지 의식하며 매일매일 어딘가를 걷고 있습니다. 선대왕의 유언은 계속 지켜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럭저럭 잘 지켜나가게 될 듯합니다.


사랑을 품고 사는 이가 자신의 모든 걸 다 내줄 때 사람은 정말 겨우 한 번 변하는 걸까요.


오월은 푸르고 정오의 태양은 싱그러운 그림자를 뉘엿뉘엿 창가에 드리우며 젊은 연인들이 가려는 길을 공평하게 비출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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